평등이 뭔가를 계속 생각하다가, 쓰다가 나온 이야기 같아요. 막상 같은 조건이라고, 시험을 예로 들잖아요, 이야기 속에서. 시험에서 시험문제가 공정하다고 개인의 환경을 신경 쓰지 않은 그게 평등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할 수 있잖아요. 그게 맞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간단한 예를 들자면 인터넷 사진에 제가 봤던, 담장이 있고 세 명의 사람이 있어요. 그 사진 아세요? 키 가장 작은 사람, 중간, 키 큰 사람. 키 큰 사람은 이미 담장 너머를 볼 수 있고.
그래서 ‘평등이 뭘까’ 했을 때, 똑같이 지급하면 된다 나무 상자를. 똑같은 나무상자를 지급하는 게 어쩌면 ‘공평하게 나눠준 거니까 이게 과연 가장 공평한 것인가?’ 했으면, 키 작은 사람은 여전히 담장 너머를 볼 수 없잖아요. 중간 사람은 잠깐이라도 볼 수 있고, 큰 사람은 쉽게 볼 수 있어요. 그러면 똑같은 나무 상자를 지급한 것은 맞지만 사실상 그들의 혜택은 다르잖아요, 받을 수 있는.
그런데 그러면 키 작은 사람한테 조금 큰 상자를, 중간 사람한테는 중간 상자를, 키 큰 사람은 작은 상자를 줘서 모두가 담장 너머를 볼 수 있게 하는 그 사진이, 봤을 때 평등과 공평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저는 무조건 똑같이 공평하게 나눠주는 게 평등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그렇죠. 우리가 교과서가 있고 공교육이 있다고 해서 똑같은 조건인가, 서울의 학원가 동네와 아니면 저 시골의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한다고 해도 이게 조건이 똑같을까? 공평할까? 이 생각은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 단어를 굳이 넣었던 것 같아요.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려고 (작품에서는) ‘지구’와 ‘콜로니’를 해 버린 거죠. 극단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
소설에서라도 좀 통쾌하게 끝내고 싶어서, 그래서 만족? 약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러면. 그래서 넣었던 결말입니다.
저는 약간 그냥 웬만하면 결말을, 강요하지 않는 결말로 끝내려고 해요 그냥. 상황만 보여주는. ‘보면 다 알겠지, 기본적으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으로. 봐서 뭐가 이상한지를 모르는 사람은 이것을 내가 굳이 강요한다고 해도 바뀌지도 않을 사람이고. 그냥 보여주는 식으로만 ‘우리 다 알죠?’ 그 느낌으로.
남자배우 김남우, 무정한 사람 최무정.
사실 김남우는 가장 보편적인, 정의롭지는 않더라도 보편적인 인물이고 최무정은 좀 차가운 인물, 무정한 인물. 그런 역할을 계속 주고 있어요. 비슷한 역할을. 쉽게 이미지화 하시라고. 캐릭터 묘사하기 편하게.
그렇죠 항상 물어보시죠. 남우는 ‘남자 배우’ 해서 김남우고, ‘임여우’라고 또 있는데, ‘여자배우’여서 ‘임여우’ 했고. 그런데 ‘여우’라는 단어가 가진 이미지가 너무 세길래 주는 이미지가. 그래서 혜화역을 지나가다가 그냥 홍혜화를 여주인공으로 쓰자. 그러니까 이름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주면 제가 이 캐릭터를 묘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쉽게 떠올릴 수 있잖아요.
갑질에서 을의 갈증을 좀 풀어줘야겠구나 이런 생각. 요즘 갑질이 언론에 너무 많이 나와 가지고/ 알잖아요? 갑질 그 사건? 그래서 을의 갈증을 좀 풀어주는 방향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