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얏!"
두석규 사장이 정강이를 감싸 쥐었다. 잠이 덜 깬 채로 욕실에 가려다가 의자와 부딪힌 것이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한 번 '퍽!' 차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다 씻고 나온 두석규는 로션을 바르기 위해 책상으로 향했다가 움찔 놀랐다. 의자의 앉는 곳이 늘어진 A4 용지처럼 축 처져 있었다.
"엇"
두석규는 급히 TV를 틀었다.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전국의 의자가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의자의 파업은 올해 들어 처음입니다. 전문가들은 약 일주일의 파업 기간을 예상 중입니다. 전국의 학교는 미리 땅바닥 수업을 준비하셔야…]
"뭐야 이거 "
인상을 찌푸린 두석규는 어떻게든 의자에 앉아보려고 시도해봤다. 그러나 엉덩이 받침 부분이 힘없이 내려갔다. 억지로 걸쳐보려고 해도 절대 허용해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의자의 파업이었다. 파업 중인 의자는 사람이 앉으면 무조건 미끄러뜨리기 때문에 쓸 수가 없다. 두석규는 의자를 책상 밖으로 치웠다.
[전문가들은 의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쌓이고 쌓여서 터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당한 의자 이용에 관한 주의점을 되새기는 한편, 특히 최근 흥행한 영화 '보근 고등학교'에서 학교의 의자를 모조리 불태운 장면이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의견도 나오는 가운데...]
두석규가 책상 앞에 서서 로션을 바르는 동안, 뉴스 앵커가 의자 파업 캠페인을 읽기 시작했다. 파업 기간 동안 모든 언론사에서 계속 내보내야만 하는 의무사항이었다.
[여러분 의자를 밟고 올라서지 맙시다. 의자 다리는 항상 수평을 맞춰줍시다. 의자를 무기로 사용하지 맙시다. 의자를...]
두석규는 TV를 꺼버렸다. 앞으로 며칠간 지겨울 정도로 듣게 될 캠페인이었다. 인간이 파업 철회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이런 것 밖에 짐작 가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온 두석규는 자가용을 보고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었다. 자동차의 의자도 모두 파업 중이기 때문에 운전이 불가능했고, 대중교통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두석규는 꽤 먼 거리를 걸어 버스에 올라탔다. 파업을 대비한 버스에는 의자 대신, 몸을 기댈 수 있는 기둥들이 서 있었다. 운전기사도 기둥에 기대 서서 손님을 맞이하는 중이다.
너도 나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라 꽉 찬 버스는 두석규를 불쾌하게 했다. 버스 안 라디오 소리조차도 거슬렸다.
[의자 다리는 수평을 맞춰줍시다. 의자를 무기로 사용하지 맙시다. 의자를...]
"거 라디오 다른 채널 좀 틀든가 끕시다!"
두석규의 마음과 똑같은 누군가가 버스 기사에게 항의했지만, 버스 기사는 큰 소리로 받아 쳤다.
"어차피 딴 데 틀어도 다 똑같고, 조금 기다리면 음악방송 하니까 좀 기다리쇼! 캠페인이 많이 나와야 얼른 파업이 정상화되지! 서서 운전하느라 힘들어 죽겠구만! "
"으음"
누군가 더 항의하진 않았다. 여기서 의자 파업으로 가장 짜증 난 건 버스 기사일 테니까.
그 때, 두석규는 무심코 판 코딱지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었다. 양복에 닦을 순 없었다. 주변 눈치를 살피던 그는 아무도 모르게 창문에 코딱지를 붙였다. 한데 잠시 뒤, 누군가 외쳤다.
"어어어? 창문이 왜 이래!"
버스 안 창문의 유리가 돌돌 말리더니 모든 바람을 통과시키기 시작했다. 누군가 짜증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런 씨, 창문도 파업이야?!"
"아 내 머리!"
사람들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때문에 투덜거렸다. 더 문제는 정면으로 바람을 맞아야 하는 버스 기사였다. 짧게 욕설을 내뱉은 버스 기사는 용접용 마스크를 꺼내 쓰고 운전했다. 창문이 파업했을 경우를 대비한 마스크였다.
버스 라디오에선 긴급뉴스가 나왔다.
[의자에 이어 전국의 창문이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올해 들어 첫 파업입니다. 각 가정에서는 비와 바람을 대비하여...]
두석규는 속으로 괜히 뜨끔했다.
'뭐야 이거? 설마 나 때문은 아니겠지?'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아무래도 봄철 황사로 더러워진 창문 청소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원인이지 않을까 판단하고 있습니다. 혹은 창문 제조 업체에서 재료에 불순물을 섞지 않았나, 경찰의 수사가 시작...]
간단히 소식을 전한 라디오에서는 곧, 의자 때처럼 창문 파업 캠페인이 흘러나왔다. 며칠간은 계속 흘러나올 내용이었다.
[창문에 돌을 던지지 맙시다. 창틀이 삐걱거린다면 기름칠을 해줍시다. 창문을 닦을 때는 안과 밖을 함께 닦읍시다. 창문을...]
두석규는 자신이 코딱지를 붙였던 창문을 찝찝하게 바라보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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