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2일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임시 난민촌에 도착하면 우선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게 된다. 미얀마에서 온 로힝야족 약 65만 명이 머무는 이곳 난민촌 인구는 프랑크푸르트 혹은 멤피스의 인구와 엇비슷하다.
그러나 그런 도시들과는 달리, 이곳 사람들은 깨끗한 물, 의료 시설, 적절한 거처를 거의 구할 수 없다. 어린 아이를 둔 어머니, 노인 등 더욱 취약한 난민들에게는 배급소까지 가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인데, 정작 배급소까지 가면 또 다시 몇 시간을 기다려야 맨 앞줄까지 가서 식량을 받을 수 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박해와 최근 벌어진 끔찍한 학살을 피해 미얀마를 떠나온 로힝야족은 이곳에서 또 다른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한다. 당장 방글라데시에서 안전은 찾았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런 규모의 캠프가 단 3개월 전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8월 25일 미얀마에서 벌어진 살인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난민들에 따르면 당시 폭력사태 속에 군, 경찰, 민병대는 남성, 여성, 심지어 아동들까지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한다.
— 먹을 것이 없는 아기들 —
쿠투팔롱에 있는 많은 로힝야족 사람들은 그간 겪은 일들 때문에 아직도 충격에 빠져 있고, 난민촌 분위기도 매우 황량하다. 남편을 잃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부인들은 그나마 자녀를 돌보려고 애써 힘을 낸다. 아내가 강간을 당한 뒤 살해된 남성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들 말한다.
캠프를 둘러싼 것은 비참하고 불결한 장면뿐이다. 한두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사람의 배설물이 뒤섞인 진흙탕에서 놀고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임시 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응급 기반 시설을 마련하려는 여러 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식수위생 여건이 적합하지 않아 건강 문제를 유발할 요인이 되고 있다.
몇몇 임시 화장실은 고작 1미터 깊이밖에 되지 않고, 이를 깨끗하게 유지할 만한 체계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그 결과, 어떤 화장실은 구덩이가 가득 차면 폐쇄해 버리는데, 이렇게 되면 시멘트 사이 틈으로 배설물이 흘러 들어가 땅에까지 스며들어 대대적인 건강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된다.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불과 1m~2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얕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식수와 세면용으로 쓴다. 이 우물들은 대규모로 들어온 수많은 난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인데, 고작 지하 10m~20m밖에 뚫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물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다. 11월 19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펴낸 주간 소식지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머무는 거처와 우물 곳곳에서 수집한 물의 58%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모두가 급성 질환에 걸릴 수 있는데, 특히 임산부와 어린 아동들은 설사와 E형 간염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
건기가 다가오면서 우물이 다 말라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도 문제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은 시추공과 화장실 사이의 연결점을 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땅을 더 깊게 파서 캠프에 있는 사람들과 의료 시설에 보다 안전한 물을 제공하고자 한다.
하지만 부족한 사항이 너무 많아 캠프 여건을 적당한 수준까지 개선하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9월에 캠프에 들어오기 전까지 알 마스카타(25세)는 생후 7개월 된 딸 누르쉐에게 모유를 먹였었다.
“이제 더는 모유가 나오지 않아서 아이에게 모유를 먹일 수 없어요.”
여기서는 분유 가루도 거의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물도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물로 분유를 만드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알 마스카타의 딸아이는 영양실조에 걸려 팔다리가 앙상하게 마르고 배는 불룩 나와 있다. 다른 아이들처럼 웃는 일도 거의 없고, 설사와 고열에 시달리며, 거의 움직이지도 못한다.
아이에게 만들어 주라고 사람들이 채소를 갖다 주기도 했지만, 아이는 소화를 시키지 못해 엄마가 무언가를 먹이려고 할 때마다 전부 게워 낸다.
“여러 단체에서 (성인들을 위한) 식량을 나눠주지만, 제 아기에게 먹일 우유는 찾지 못했어요. 저는 언덕 쪽에 살기 때문에 배급처까지 아이 셋을 데리고 가기가 쉽지 않아요.”
한편, 마스카타의 남편은 미얀마에서 살해 당했다.
알 마스카타는 부순 쌀을 물에 끓여서 누르쉐에게 우유 대용으로 먹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충분치 않아 누르쉐는 계속 허기를 느낀다.
“아이들이 걱정이죠.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사는 것이 이상적이지는 않았어요. 위험하고 불안정했죠. 하지만 적어도 작게나마 경작지가 있었고, 다만 얼마라도 돈이 있었어요.”
“벌써 두 달째 아이들이 계속 아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저분한 캠프를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죠.”
캠프에 살고 있는 아동들의 심각한 상황을 반영하듯, 국경없는의사회가 치료하는 환자 대다수는 5세 미만이다. 국경없는의사회 의사들이 주로 치료하는 질병은 설사, 호흡기 질환, 그리고 최근 일어난 디프테리아 전염병이다. 앞서 홍역이 발병해 처음으로 사람들이 의료 시설에 입원하기도 했고, 이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에 대응해 최근에 대규모 예방접종 캠페인을 실시했지만, 여전히 예방접종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 ‘아무것도 없이 지내기’ —
근 100세를 바라보는 딜라포루즈의 삶은 너무도 힘겹다. 딜라포루즈는 아들 솔림과 함께 캠프에 도착했는데, 미얀마에서 나와 방글라데시에 올 때까지 8일 동안 솔림이 어머니를 등에 업고 이동했다. 며느리 자후라와 손주 6명도 함께 왔다.
지긋한 나이지만 딜라포루즈는 올여름 ‘톰 바자르’라는 동네에 살 때까지만 해도 건강 상태가 나았었다. 현지 의사들이 수시로 집에 찾아와 필요한 약을 제공해 주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딜라포루즈는 죽어 가고 있다. 중증 천식으로 숨 쉬기도 힘들고, 단단한 것은 전혀 먹지 못하며, 호흡이 달려 말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유일한 삶의 이유인 아들 며느리 내외가 딜라포루즈에게 단맛이 나는 음료를 계속 먹여 준다. 며느리 자후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안전하게 있죠. 시어머니께서 많이 아프시다는 것 말고 다른 문제는 없어요. 구호 단체에서 의료 지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밤낮으로 기침하시면서 고통 속에 신음하시는 것을 보니 우리 모두 너무 슬퍼요.”
“남편이 일을 찾으면 도움이 될 테지만 캠프에서 그럴 수는 없겠죠. 게다가 일을 구하려고 콕스 바자르 시로 가는 일은 금지돼 있으니까요.”
자후라 말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치안 검문소에서는 로힝야족이 캠프 인근을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티다웅’이라는 도시를 떠나온 줄체르(65세)는 인근 발루크할리 캠프에서 지내고 있는데, 날마다 사투를 벌이는 기분이다. 수백 명의 다른 사람들처럼 줄체르도 식량 배급처 앞에 줄을 서서 7시간을 기다렸다. 줄체르는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된 아들 알라딘을 미얀마 군이 산 채로 묻었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뙤약볕 아래서도 줄체르는 희망을 갖고 아들 모하마드(20세)를 챙겨 주려고 애쓴다. 두 사람은 캠프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아들은 너무 아파서 거처를 나설 수 없기 때문에 줄체르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여기서는 그 누구도 우리를 죽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해결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줄체르의 삶은 온통 슬픔으로 얼룩져 있지만, 라피크의 삶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캠프에서 지내던 라피크는 한 살 된 아들 모하마드 아윱을 폐렴으로 잃고 말았다.
라피크 가족도 8월 후반에 부티다웅 시를 탈출했다.
라피크는 흰 천에 감싼 아들의 시신을 가슴에 품고 아들을 묻을 장소로 향했다.
“저는 끝까지 살아남아 모하마드 아윱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은 문제가 없었는데, 캠프에 있으면서 몸이 나빠졌습니다. 캠프를 한번 보세요. 제 아들이 왜 아프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죠. 그래도 최소한 제 아들은 평화롭게 잠들지 않았나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 봅니다.”
사진 출처 ⓒMohammad Ghannam, 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