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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월도 섬앤산

글 신준범 차장대우 jbshin@chosun.com / 사진 주민욱 기자 minwook19@hanmail.net

억울함 알아 주는 자줏빛 달이 뜨는 섬

선착장에서 1시간 걸으면 국사봉 정상… 육산이라 경치 없지만 깨끗한 모래 해변 많아

조선 인조 때, 관아에서 일하던 이가 자월도로 귀양을 왔다. 귀양 첫날 밤, 도통 잠이 오지 않아 나간 해변에서 보름달을 보았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자 달이 자줏빛으로 변하며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그는 하늘도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준다며 ‘자월도紫月島’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아침 배를 놓칠 뻔했다. 시화공업단지와 반월산업단지로 출근하는 차량의 홍수. 시화방조제에서 바다가 드러나고 나서야 출근 차량들과 이별할 수 있었다. 겨우 배에 몸을 실어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본다. 일상과의 이별, 하룻밤 모든 관계와의 작별이다. 이별은 휴식이 되기도 한다.

50분의 짧은 항해를 마치고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김민선·연세산악회 최동혁씨와 함께 섬에 든다. 선착장의 관광안내소가 먼저 눈에 띄었다. 간이 사무실을 지키는 어르신께 국사봉 산행 코스를 묻자, 시계 방향으로 섬을 돌며 둘러볼 명소를 읊기 시작했다. 구구절절 이어지는 설명을 끊을까 고민했으나, 기계적인 설명이 아니었기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묵은 세월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곳 자월도엔 풍경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곧장 섬 최고봉인 국사봉으로 향했다. 선착장의 ‘국사봉’ 이정표는 참을 수 없다. 산꾼들은 섬에서도 산행 습관을 끊지 못한다. 정상으로 이어진 이정표만큼 명쾌한 길잡이는 없다. 해발 0m에서의 제대로 된 출발은 시작부터 난처하다. 임도를 따라 이어지더니 도로로 연결된다. 수수께끼 같던 산입구 찾기는 마을 주민께 묻자 금방 해결되었다. 풀이 무성한 임도를 가리키며 “원래 등산로 이정표가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한다.

월도 BAC 인증지점인 국사봉 정상 표지석. BAC 인증 프로그램을 기획한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김정배 부장(가운데)

여름 산행은 곤혹스런 면이 있다. 풀이나 넝쿨이 등산로를 완전히 뒤덮어 생채기 몇 개를 보고 나서야 통행을 허락한다. 밤나무, 소사나무, 굴참나무, 자귀나무, 소나무, 팥배나무, 벚나무, 고로쇠나무를 헤아리며 눈인사를 한다.

최소 일주일은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은 숲을 치고 오른다. 넝쿨이 많지만 가시가 짧아 스틱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다. 공격적이기보다는 최소한의 자기 보호를 위한 방어에 가까운 초본 식물. 한 해 살이 풀이라 하여 아무렇게나 막 살지 않는다. 하루살이라 하여 하루를 흥청망청 살지는 않는다. 나무도 풀도 곤충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음을 산행을 통해 배운다.

아름다운 날개 문양을 가진 나비가 찾아왔다. 정상 난간에 널어둔 땀에 젖은 옷이 순간 신비로워졌다

임도 벤치에서 물을 들이킨다. 쨍한 햇살만큼 파란 하늘, 흥건히 땀 빼기에 제격이다. 국사봉을 휘감아 도는 임도를 가로질러 정상으로 향한다. 짧은 오르막이 끝나는 곳에 이름 없는 봉우리가 있다. 터는 좁지만 봉화대로 쓰였을 법한 돌탑이 있고, 돌탑 가운데에 뿌리내린 소사나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가민 GPS로 확인한 이곳의 고도는 175m, 지도상 자월도 최고봉인 국사봉(165m)보다 10m 더 높다. 높이로만 정상이 결정되지 않는 것은, 정상다운 봉우리의 기세를 보기 때문이다. 조망이 얼마나 좋은지, 터가 얼마나 넓은지 같은 봉우리다운 맛에 따라 정상이 되기도 한다.

산에서도 짜장면이 배달된다!

살짝 내려섰다가 얕은 오르막을 올라서면 “벌써 정상”이다. 선착장에서 1.8km 만에 닿은 정상, 32℃의 뙤약볕을 감안하면 딱 좋은 타이밍이다. 신선의 왕궁인양 짙은 초록 넝쿨이 100여 평 정상 일대를 에워싸 호위하고 있다. 팔각정에 오르자 비로소 드러나는 바다. 산에선 바다가 그립고, 바다에선 산이 그립기 마련인데, 섬산은 그런 사람 심리를 다 알고 있다는 듯 절묘하게 경치를 내어준다.

하늘 궁전의 출현이다.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르네상스 시대 궁전마냥 웅장한 모양으로 다가온다. 서쪽으로는 덕적도가 헤엄치는 고래마냥 자연스럽게 뻗어 있고, 북쪽으로는 송도신도시가 첨단 도시의 위용을 깨알 같은 건물로 드러낸다.

웃음이 나는 건 정자 기둥마다 붙여 놓은 ‘짜장짬뽕 011-351-0000’ 스티커, 김민선씨가 호기심에 전화를 걸었는데 착신 전환이 되면서 실제로 중국음식점에서 전화를 받는다. 국사봉 정상까지 배달은 안 되지만 300m 떨어진 임도 물탱크까지 배달 가능하다는 것. 산에서 짜장면 배달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색다른 사실에 한바탕 즐겁게 웃는다.

정상 표지석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곧장 내리막길을 이어간다. 중국집에서 얘기했던 임도 물탱크를 지나 다시 산길을 고집해 짙은 숲 산등성이를 넘었다. 매미 떼가 마지막 힘을 짜내 사랑을 갈구하는 소리에서, 청춘 닮은 여름 한복판을 지나고 있음이 실감났다.

드문드문 핀 꽃이 말을 걸어 왔다. 초록 세상에서 노랗고 파란 꽃 피우기 위해 쉼 없이 삼켰던 햇살, 세력 싸움에 밀릴까 조바심 내며 뻗은 뿌리로 삼킨 물방울들. 무한 경쟁에서 참고 삼켜낸 것들 응어리로 꼭꼭 모아뒀다가 터뜨린 찬란한 고백. 원추리, 참나리, 달개비, 기생초, 꽃댕강나무의 구구절절한 고백에 평범한 숲길이 특별해진다.

마을로 내려와 숙소에 짐을 풀고 팽팽히 당겼던 등산화 끈을 풀어헤친다. 달디단 휴식을 취하고 다시 햇살 속으로 뛰어든다. 선착장 문화해설사 어르신께서 꼭 가야 한다고 권했던 하니깨(하니포) 목섬에 갔다. 자월도는 한 ‘일一’자처럼 길게 뻗었는데 산줄기가 일자로 뻗어 있다. 묘한 것은 고개 넘어 북사면으로 들면 외딴 오지 섬마냥 고요하고 인가가 드물었다.

하니깨해변의 목섬 갯바위를 둘러보았다.

목섬 입구에서 대나무숲이 맞아 주는가 싶더니 배롱나무 꽃(백일홍)이 늘어서서 발갛게 홍조를 띠고 있었다. 원두막 같은 정자가 고개 위에 있고, 아래로 목섬이 보였다. 목섬 가는 길은 코스모스며 무궁화겹꽃 같은 꽃들로 화원을 만들어 놓았다. 잘 정돈된 화원이 아니어서 야생화밭인가 혼돈되었지만, 섬사람들의 거친 낭만이 풍겨왔다.

황홀한 일몰 기대했으나 현실은…

볕난금해변 서쪽의 바위지대. 수도권에서 멀지 않지만 섬 특유의 여운 있는 자연미가 있다.

바다 사이로 난 짧은 데크다리를 지나 목섬 위에 올라서니 작은 전망데크가 망망대해 쪽으로 나 있었다. 휴가철이지만 관광객은 없었고, 섬은 그 어느 해 여름보다 조용했다. 바다 앞에 서니 고요함이 증폭되는 것만 같았다. 안내판의 ‘달빛 고운 전통 농촌과 어촌 풍경이 어우러진 이곳 자월도에서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라는 문구에서 이상하게 쓸쓸함이 묻어났다.

해변의 낭만을 즐기는 인천대산악부 김성원,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김민선, 연세산악회 최동혁씨.

섬 남쪽으로 넘어와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걸었다. 장골해수욕장과 큰말해수욕장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눈망울이 맑은 섬소년 닮은 작은 모래해변이 3~4개 연달아 나타났다. 이윽고 넓은 장골해수욕장에서 자월의 달을 기다렸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는 폐장했다는 현수막만이 펄럭이고 나머지는 침묵하고 있었다.

장골해변 독바위 일대 갯바위를 둘러보는 김성원, 김민선, 최동혁씨. 멀리 달바위선착장이 보인다.
자월도 대표 명소인 장골해변. 해변이 가진 크기와 풍경, 편의성, 깨끗함에 있어서도 최고다.

땀에 젖은 몸을 해가 지는 방향으로 마주했다. 바람이 다가와 얼굴을 매만졌다. 바람이 사람 온기처럼 따뜻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몰락 같은 황홀한 노을을 기대했으나, 현실은 흑백 사진이었다. 밤이 되어도 자줏빛 달은 오지 않았다.

자줏빛 달이 뜨면 토로할 억울함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부드러운 어조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좋았다. 밀물이라 하여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아니었다. 어느 해보다도 조용했던 여름 해변을 달맞이꽃이 덩그러니 밝히고 있었다

갑진모래해변 방파제 뒤로 승봉도와 대이작도, 소이작도가 유영하는 고래마냥 수평선 끝에 떠있다.

자월도 가이드

인천 옹진군 자월면의 섬으로, 안산 방아머리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50분이면 닿는다. 섬 내 야영이 금지되어 있어 하룻밤 묵으려면 펜션을 이용해야 한다. 당일치기로 섬을 찾은 이들은 선착장의 순환버스로 목섬에 들렀다가 국사봉 산행 후 큰말해수욕장으로 내려와 해안도로를 따라 장골해수욕장을 거쳐 선착장으로 원점회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사봉은 육산이라 정상 외에는 시원한 경치를 기대하긴 어렵다. 산 둘레로 이어진 임도가 있어 산악자전거를 타고 섬을 구경하는 것도 효율적인 방법이다.

산행은 들머리 찾기가 관건이다. 선착장에서 국사봉 이정표를 따라 임도를 올라서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측 도로를 따라 50m 정도 가면 ‘오케이펜션’이 나오는데, 펜션 옆 흙길 임도를 따라 오르면 국사봉 등산로로 연결된다. 선착장에서 정상까지 1.8km이며 쉬엄쉬엄 가도 1시간이면 닿는다.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1.1km를 가면 가늠골 이정표가 있는 찻길에 닿는다. 이어서 섬 서쪽으로 진행하려면 가늠골 방향으로 도로 따라 100m 내려가서 비포장 임도를 따라가는 방법이 있다. 서쪽으로 진행하더라도 특별한 볼거리는 없어 도보 여행객들은 대부분 가늠골 갈림길에서 큰말해변(면사무소) 방면으로 하산해 해안도로 따라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BAC 인증지점

국사봉 정상 표지석 37.256505, 126.315628

교통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과 안산 방아머리선착장에서 배편이 있다. 8월 기준 인천항에서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차도선(07:50)과 승객만 탑승 가능한 쾌속선(08:30, 15:00)이 운항한다. 자월도에서 나오는 배편 차도선(16:10), 쾌속선(10:15, 16:45). 왕복 요금은 차도선 2만3,100원, 쾌속선 3만8,300원. 주말 요금은 2,000~4,000원가량 더 비싸다. 인천시민은 80% 할인된다.

안산 방아머리선착장에서는 차도선이 평일 1회(08:40), 주말 2회(08:00, 12:30) 출발한다. 돌아오는 배편 평일 15:45, 주말 10:45, 15:45. 50분가량 걸린다. 인천에서 출발하면 20분 정도 더 걸린다. 왕복 요금은 1만9,000원. 차량을 실을 경우 왕복 8만~10만 원 정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