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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오르는 길 조명심·김혜리

이 인터뷰는2019년 출판된 BAC의 '명산100과 사람들'에 포함된 내용을 재편집 하였습니다.

6년 전 이미 명산 100 프로젝트 100좌를 완주한 조명심 씨는 이제 막 50좌를 넘어선 딸 김혜리 씨를 위해 오늘도 함께 산에 오른다. 사춘기를 지나며 서먹해졌던 딸과의 관계는 산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돈독해지고, 산에서 만든 소중한 추억은 밤새워 나누어도 모자랄 만큼 높이 쌓였다. 산을 통해 딸을 감싸 안고, 산을 통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모녀의 이야기다.

늘 딸과 함께 산에 오르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등산을 함께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늘 저 혼자 산에 다니다 제 생일을 기념해 함께 광주 무등산에 오른 것이 계기가 됐어요. 그전까지 아이들은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만 몇 번 경험해본 터라 힘들 수도 있었을 텐데 생일 기념이니 꼭 함께 해야 한다고 무작정 올랐죠. 당시엔 힘들다고 투정도 많이 부리더니 내심 좋았는지 그 이후로 등산용품을 구매해 주말마다 함께 산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같은 해 겨울에 계방산 눈꽃 산행을 딸아이와 함께 했는데 다녀온 뒤에 그동안 제가 왜 그리도 산을 찾았는지 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홀로 산에 다닐 때와 다른 점이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요?

산행이 단시간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어요. 지금껏 잘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사이도 전보다 돈독해졌죠. 서로 의지하며 산을 오르다 보면 더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이 중·장년층인 등산객 사이에 20대 딸과 함께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요.

그렇죠? 딸도 산악회 활동 등을 해보려고 하는데 대부분이 중·장년층이라 젊은 층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부족한 점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참여 가능한 명산 100 프로젝트에 도전하면서 완주에 대한 목표 덕분에 등산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조차도 딸이 이 정도로 산에 빠져 매주 함께 등산을 즐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제 부탁 때문에 반 강제로 산에 올랐거든요.

명산 100 프로젝트 완주라는 목표 덕분에 따님이 계속 산에 오르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명산 100 프로젝트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사람들을 단순히 산에 오르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도전하게 하고, 인증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제 딸도 이 점 덕분에 계속 산에 오르는 것이고요. 더불어 산을 사랑하는 사람끼리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제공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에요. 명산 100뿐 아니라 역사 문화 탐방 트레킹, 클린 마운틴 등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이 정말 많아요. 딸아이도 명산 100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로 산행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어울리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있고 싶거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오히려 등산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해요.

딸과 함께 산에 다니며 좋았던 기억도 참 많을 것 같아요.

딸도 가장 좋았다고 말하는 계방산 산행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름다운 설산 풍경을딸과 함께 볼 수 있었다는 게 정말 행복했어요. 눈이 많이 쌓여 평소보다 긴장하며 산에 오르긴 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저는 이미 100좌를 완주했으니 딸과 산행하며 지금껏 제가 봤던 아름다운 풍경들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두 분 모두 명산 100 프로젝트와 산을 통해 좋은 변화를 경험하는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사람들에게 소개할 만한 변화가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아픈 곳이 많았어요.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참여해본 적이 없을 정도였죠. 친구들 사이에서 늘 아프고 약한 아이로 불렸고 성인이 된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오래 걷기만 해도 힘들었고 체력이 약한 탓에 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죠. 그랬던 저였기에 산에 오르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한 좌, 한 좌 늘어날수록 턱 끝까지 차오르던 숨도 점점 안정되기 시작하고, 조금만 걸어도 떨리던 다리가 단단히 땅을 딛고 설 수 있게 되더라고요. 100좌를 완주한 지금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훨씬 여유롭고 안정된 느낌이에요. 산을 통해 제 자신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죠.

딸의 경우 산을 만나기 전엔 쉬는 날 대부분 친구를 만나거나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었다면 지금은 저와 산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다는 점, 그리고 급했던 성격이 산행을 하며 여유로워졌다는 점요. 늘 이리저리 급하게 돌아다니다 다치기 일쑤였는데, 등산을 시작한 후론 느긋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그간 두 분이 다녀오신 산만 해도 100곳이 훌쩍 넘는데, 그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산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소백산의 비로봉~국망봉~자락길~비로사 코스를 추천하고 싶어요. 삼가주차장에서 시작해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예요. 10시간 20분이 소요되는 긴 코스여서 힘들 순 있지만 봄에 꼭 올라보셨으면 좋겠어요. 활짝 핀 철쭉이 절경이거든요. 좋은 사람들과 꽃구경하며 오르기에 딱 좋은 코스입니다. 그리고 겨울엔 눈꽃이 아름다운 계방산의 운두령~이승복 생가 코스를 추천합니다. 딸과 함 아름다운 설산을 경험한 곳이기도 해 많은 분께도 권하고 싶네요.

이미 100좌를 오른 완주자로서 50좌를 넘어선 따님을 비롯해 다른 도전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100좌 완주에 210여 일 정도가 걸렸어요. 비교적 빠른 편이었죠. 하지만 완주하는 데 걸린 기간에 신경 쓰거나 너무 서두르지 않아야 해요.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본인의 컨디션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절하며 꾸준히 지속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증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산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으로 임한다면 완주 목표를 더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인증에만 너무 몰두하다 서두르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그 밖에 산행을 하며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그 때문에 서두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요. 산을 잘 안다고, 젊다고 무조건 안전하진 않아요. 아무리 능숙한 산악인이라 해도 언제든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곳이 산이니까요. 천천히 여유를 즐기면서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또 자연보호를 위해 쓰레기는 반드시 직접 가지고 내려와야 합니다. 이 점 만큼은 산을 사랑하는 모든 분이 꼭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따님의 가방에 달린 클린 도전단 태그가 눈에 띄네요. 두 분 다 산을 정말 사랑한다는 게 느껴져요.

건강을 위해 시작한 등산인데, 산 덕분에 건강은 물론 마음의 여유까지 얻었으니 산을 사랑할 수밖에 없죠. 딸과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도 선물해준 곳이고요. 산에 오면 늘 행복합니다. 딸아이는 등산이 참 묘한 매력을 지녔다고 이야기해요. 이 힘든 걸 왜 하나 싶다가도 정상에 서고 나면 이래서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정신 차리고 보면 또 다른 산에 올라 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50좌를 넘어섰다고 하면서요. 힘든 과정을 지나고 나면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점,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걸 생각하면 산과 삶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그렇죠. 정상에 오르기 위해 긴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하고, 정상에 오른 뒤에도 성취의 기쁨을 마냥 누리고 있을 수만은 없죠. 정점에 오른 뒤엔 반드시 내려와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는 점도 삶과 닮은 것 같아요.

삶에서도 산에서도 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잖아요. 산행 중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저는 등산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마음이 잘 맞아 늘 즐겁게 산행을 했어요. 딸과 하는 등산도 행복하고요. 물론 힘이 들긴 하지만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아직 없답니다. 한 번은 딸아이가 유독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었는데, 버스에서 멀미까지 하고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그대로 포기하면 다른 산에 가서도 쉽게 포기할 것 같다면서 끝까지 산에 오르더라고요. 그 모습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했던 기억이 납니다.

산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하네요, 언제까지 산에 오를 계획인가요? 산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15년은 더 오를 수 있지 않을까요? 산 덕분에 든든한 체력을 얻었으니 딸들과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꼭 가보고 싶어요. 딸과 일본 후지산에 다녀왔는데 해외의 다른 산들도 더 많이 경험해보고 싶고요. 밤을 지새우며 산에 오르던 기억이 지금도 잊히지 않네요. 전문 산악인은 아니니 특정 산을 목표로 하기보다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계속하고 싶고, 더 많은 사람에게 등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좋은 점들을 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