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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로 본 섬 이야기 민병준 칼럼

대동여지도로 본 ‘섬&山’

가거도, 홍도, 흑산도, 우이도

우리나라는 ‘섬 대국’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 섬이 많다는 사실은 알아도 ‘섬 대국’이란 단어가 낯설 수도 있다. 몇 개나 될까.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발표한 2015년 말 기준으로 총 3,348개다. 이 중에서 유인도 472개, 무인도 2,876개다. 북한의 섬이 1,045개라니 이를 더하면 모두 4,393개가 된다. 세계 상위권이다.

1대동여지도 우리나라 서남해안. 수많은 섬들이 떠 있다.

유인도 472개. 섬과 산을 모두 좋아하는 입장에선, 섬에 산이 하나씩 있다고 가정하고, 1년이 52주이니, 매주 1곳씩 오르면 대략 10년. 무인도까지 합치면 64년이 넘게 걸린다. 한평생 섬만 다녀도 이루지 못할 숫자다. 그런데 우리가 특별한 의미를 두는 ‘100’이란 숫자를 넣어 100개 섬이라면 시도해볼 만하다. 산술적인 2년으로는 빠듯하겠지만, 섬이라는 특성을 살펴도 3~4년 정도면 달성하지 않을까.

대동여지도에선 대략 5개 유형으로 나눠서 섬을 표현

한자문화권에선 섬을 도서(島嶼)라 부른다. 큰 섬은 도(島, island), 작은 섬은 서(嶼, islet)라 구분한다. 대동여지도에 섬은 몇 개일까. 남북 합쳐 모두 1,261개다. 이 중 964개는 지명이 있고, 297개는 없다.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서 섬을 대략 5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표현하고 있다. 바위섬, 작은 섬, 중간 섬, 큰 섬, 하중도(河中島, 하천섬)다.

대동여지도 부산 앞바다. 대동여지도에 바위섬과 섬이 어떻게 표현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바위섬을 보자. 고산자는 바위섬을 삐죽삐죽한 돌조각 형태를 섬의 크기에 따라 여러 개로 묘사했다. 글자 표기는 암(岩), 서(嶼), 산(山), 도(島) 등 다양하다. 그렇지만 끝에 서(嶼)가 붙은 지명은 모두 바위섬이다. 명칭이 없는 바위섬도 있다.

작은 섬은 산봉우리만 2~5개 그려 표기했다. 고산자는 섬의 산봉우리를 육지와 마찬가지로 톱니 모양으로 표현했다. 작은 섬들의 표정은 큰 차이 없이 거의 비슷하다. 대부분 유인도다.

중간 섬은 산봉우리와 산줄기를 그려 넣었고, 해안선으로 섬의 규모를 표현했다. 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큰 섬은 도로, 마을을 다스리던 치소(治所) 등도 표기했다. 하중도는 모래섬이어서인지 대부분 외곽선만 둥그렇게 그렸다.

대동여지도 흑산도 주변. 우리나라 서남단을 지키는 섬들이다.

대동여지도로 읽는 서남단의 섬들

대동여지도를 펼쳐놓고, 블랙야크가 진행하고 있는 ‘섬&산100’ 대상지에서 몇 개의 섬을 살펴보자. ‘섬&산100’ 리스트 중 가장 먼저인 가거도(可居島)를 기준으로 그 일대의 흑산도, 우이도로 가보자.

이 일대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서남단 해양을 방어하던 곳이다. ‘흑산도진(黑山島鎭)’이 그 역할을 맡던 수군 본부다. 현대의 측량 지도 위치를 확인하면 이 섬들은 서쪽으로 더 멀리 위치하는데, 고산자는 육지 쪽으로 가깝게 붙여 표현했다.

대동여지도 가거도. ‘가가’로 표기돼 있다. 가가도라는 의미다.

대동여지도 맨 왼쪽, ‘가가(可佳)’라는 섬은 지금의 가거도(可居島)다. 이 섬은 한때 ‘소흑산도’라 불리기도 했으나 주민들은 대대로 가거도라 했다. ‘가히 사람이 살만한 섬’이라는 의미라 한다. 최고봉은 독실산(639m). 육지의 웬만한 산들과 어깨를 겨뤄도 꿀리지 않는 높이다. 덩치도 우람하고 섬 전체가 급한 절벽이라 농토가 거의 없다.

대동여지도 홍도. ‘홍의’로 표기돼 있다. 홍의도라는 의미다.

가거도 동쪽의 ‘홍의(紅衣)’는 지금의 홍도(紅島)다. 이 섬이 홍의도(紅衣島)라 불린 까닭은 섬을 뒤덮은 동백꽃과 해질녘 깔리는 붉은 노을에 섬이 붉은 옷을 입은 듯해서다. 지질학적으로도 섬을 이루고 있는 암석은 홍갈색의 규암이다. 이렇듯 온통 붉디붉은 홍도는 섬의 분위기가 여성스럽다 하여 여성, 독실산 우뚝 솟은 가거도는 남성에 비유한다.

대동여지도 대흑산. 지금의 흑산도다.

홍도 동쪽의 ‘대흑산(大黑山)’은 지금의 흑산도(黑山島)다. 섬 서쪽의 깃대봉(378m)이 최고봉이다. 북쪽에 상라산(上羅山, 227m), 남쪽에 선유봉(仙遊峰, 300m) 등이 솟은 섬 전체가 산지다.

이 섬은 선비들의 유배지였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형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유배 왔다가 세밀한 해양생물학 서적인 《자산어보》를 남겼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에 정약전의 유배 생활이 잘 묘사돼 있다. 애국지사 최익현(崔益鉉)도 강화도조약을 반대하다 1876년 이곳에서 3년간 유배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대동여지도 ‘흑산도’. ‘흑산도진’이 있던 섬으로 지금의 우이도다.

대동여지도의 ‘흑산도’는 지금의 우이도

‘대흑산(大黑山)’ 동쪽의 ‘흑산도(黑山島)’는, 헷갈리지 말자. 지금의 흑산도가 아니다. 모래 언덕으로 유명한 우이도(牛耳島)다. 고지도를 감상할 때 이런 대목에서 어려운데,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흑산도(黑山島)’는 섬 이름이 아니라, 방어를 위해 조성한 군사시설인 진(鎭) 명칭이다. 섬 안에 그려진 사각형이 바로 조선 서남단 해양을 지키던 ‘흑산도진(黑山島鎭, 黑山鎭)’이 위치함을 알리는 표기다.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 생활을 다룬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고산자 김정호도 헷갈림을 방지하려 ‘흑산도진’이 있는 섬 남쪽에 “본래 우이도(本牛耳島)다”라고 따로 써놓았다. 김정호의 지리지인 《대동지지》에도 “흑산도진은 우이도 안에 있다. 처음엔 별장(別將)을 두었다. 수군만호 1명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조우진이 맡은 역할이 바로 흑산도진의 우두머리다. 진리(鎭里)라는 마을 지명도 흑산도진이 있던 마을이란 데서 유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조우진이 연기한 흑산도진 우두머리.

영화 〈자산어보〉에 묘사된 ‘위대한’ 유배 생활

정약전은 흑산도진에서 관할하던 흑산도와 우이도를 오가며 유배 생활을 했다. 그 당시 우이도의 홍어 장수 문순득(文淳得, 1777~1847)이 동남아 일대를 표류했다가 3년 2개월 만에 귀향한 이야기를 듣고 《표해시말(漂海始末)》이라는 책도 남겼다. 이 이야기도 영화 〈자산어보〉에 묘사된다.

하지만 강진에 유배당했던 동생 정약용과 달리, 정약전은 유배에서 풀려나지 못했고, 유배 16년 만인 59세에 세상을 떠났다. 흑산도진이 있는 우이도에서.

어려운 상황임에도 절망하지 않고 우리나라 서남단 섬에서 얻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 정약전. 그의 유배 생활은 실로 위대했으니, 고산자도 흑산도와 우이도를 목판에 새기며 정약전을 기렸으리라.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