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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코리언의 지금 "지금"을 살아가는 재일코리언 청년들의 선택

일본에 삶의 터전이 있지만 한반도에 뿌리가 있는 재일코리언이 현재 어떤 행위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떤 요인이 관여되는지가 이번 연구의 핵심내용입니다.

0. 재일코리언이란

이번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1910년~1945년)를 전후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오게 된 이들을 "재일코리언"으로 정의합니다. 토지조사사업, 강제연행, 강제 노동 등의 이유로 많은 코리언이 일본으로 건너 갔고 광복 이후에도 귀국하지 않거나 귀국하지 못한 이들의 후손이 현재까지 일본에서 삶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연구목적

재일코리언은 세대별로 각각 다른 시대적 배경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경험의 차이가 당연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일코리언 1~2세 때 시행된 연구내용이나 당시에 각종 미디어에서 보도된 정보량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사람은 지금도 1~2세에 대해 얻은 정보로 된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는 현재 재일코리언 청년층을 구성하고 있는 3세~4세에 대한 오해를 유발합니다.

재일코리언을 둘러싼 차별과 편견, 혐오가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사건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조선학교를 정부가 고등학교 무상화에서 배제시킨 사건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과 일본 사회로부터의 차가운 평가는 또래가 되는 연구자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재를 사는 재일코리언이 일본사회에서 인식하는 것보다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면모를 지닌 존재일 것을 예상하게 되었고, 재일코리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아는 것은 그들과 일본사회가 진정한 의미로 공존하기 위한 첫 걸음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현재 재일코리언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재일코리언 3~4세에 대한 질적 연구를 통해 그들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2. 연구방법

재일코리언 3세, 4세를 중심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했습니다. 본인이 재일코리언은 아니지만 재일코리언과 인연이 깊은 인포먼트, 그리고 재일코리언 2세인 인포먼트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의 경험도 연구 내용에 포함함으로써 조금 더 포괄적이고 다양한 시각으로 재일코리언의 지금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2021년 4월부터 6월까지 총13명에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코로나 상황과 시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인터뷰는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으며 주로 온라인 플렛폼인 zoom을 통해 진행하였습니다.

인포먼트들이 사용하기 편한 언어로 인터뷰가 진행되었으며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인터뷰가 일본어로 진행되었습니다. 따라서 연구 결과 부분에 나오는 직접인용은 일본어로 이야기된 내용을 연구자가 한국어로 번역한 내용입니다.

3. 연구결과

3-1. 본 연구에서 접근할 수 있었던 13명의 인포먼트는 공통적으로 자신의 뿌리가 한반도에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가 흔하지 않다는 점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인포먼트들이 자신이 재일코리언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 "조선학교", "커뮤니티", "가족"을 꼽았습니다.

① 조선학교
“역시나 다닌 사람과 안 다닌 사람은 확실히 민족의식은 다르죠.” (M)
“세대차이보단 일본학교로 가는지 아니면 조선학교로 가는지가 정체성에 차이를 주는 것 같다.” (K)

본 연구에서 만난 13명의 인포먼트중 무려 8명이 조선학교를 다닌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일코리언과 연구자들의 만남을 가능케 했던 이유, 접근성의 원인이 정체성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 다시 말해 얼마나 재일코리언으로서의 자아를 가지고 일본사회에서 살고 있는지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할 때 조선학교는 특히나 영향력을 가진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정말 다녀서 좋았다고. 생각보다 정체성의 차이는 자신의 인생의 무기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는 무기로 쓸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죠.”(C)
“저는 조선학교를 다녀서 ‘아니 그건 틀렸다’라고, 제가 배운 것에 의하면 그렇게 편견을 가지고 소외될 만한 존재가 아니고 조선인은 조선인으로서 존엄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아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조선학교덕분이라고 생각했어요.” (L)

C와 L의 인터뷰에서는 조선학교에서의 교육이 재일코리언이 스스로의 존재를 확실하게 정의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렇게 자신의 존재가 명백해지는 것이 일본사회를 살아가는데 유용하게 작용함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인포먼트들이 본인이 재일코리언이라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그 사실을 드러낼 수 있는 한 요소로 조선학교에서의 경험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②커뮤니티

재일코리언으로서 민족교육을 받고 싶을 경우 가장 효과적인 선택은 역시나 조선학교일 것입니다. 그러나 장래 일본학교로 진학하거나 일본회사에 취업하고 싶은 재일코리언들에게 조선학교가 처한 법적, 제도적 위치는 일종의 걸림돌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때문에 조선학교에 가지 않기로 한 자들에게 조선학교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장으로 커뮤니티가 존재합니다.

현재 재일코리언 사이에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이하 조총련)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이라는 크게 두 가지 커뮤니티가 존재합니다. 조총련은 북한과 관계를 맺고 있는 단체이며 민단은 한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단체입니다. 재일코리언의 커뮤니티는 “재일본조선인연맹”이라는 하나의 조직으로 시작하였으나 일본 정부의 탄압, 남북 분단, 이념 차이 등을 이유로 여러 조직으로 파생돼 지금의 조총련과 민단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조총련과 민단 산하에는 각각 교육기관으로 “조선학교”와 “한국학교”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그런 이벤트나 행사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데려가요.”(D)

조선학교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하여 재일코리언 4세인 아이들을 일본학교로 보내게 된 D는 아이들이 민족교육을 배우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 각종 커뮤니티에 참여시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일본사람처럼 살아가려고 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B)

재일코리언 관련 기관의 종사자인 B는 중학교부터 일본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진 경험이 있습니다. 이때 재일코리언 커뮤니티가 자신이 재일코리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커뮤니티는 조선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는 재일코리언이 일본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혼란을 해결해주는 장치로도 작동하고 있다.

③가족
“아버지도 어머니도 조선학교 출신, 어머니는 조선학교 교사도 했었고(중략...) 어머니가 조선어도 공부하자고 해서 언어도 가르쳐줬었고…”(I)
“조선반도에 루트가 있다는 것을 가정 속에서 생각하곤 했었는데요(중략...) 제사가 있거나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곤 했었는데…”(J)

인포먼트 I와 J는 주변에 조선학교도 재일코리언의 커뮤니티도 없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가정에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인식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경험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들은 일상에서 한국문화를 접하는 기회가 많았으며 자신의 뿌리에 관해 책을 읽거나 부모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한일축구경기에서) 우리 집은 아예 완전히 한국을 응원해요. 역사관에 관해서도 일본이라기보다 한국, 조선의 역사관이고…”(L)

L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일본학교를 다녔지만 대학생이 된 현재까지 재일코리언으로서의 자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인터뷰에도 응해주었고 대학에서 재일코리언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재일코리언이 가정 속에서 경험하는 일들은 이들이 스스로의 자아를 형성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④조선학교를 구심점으로 한 연대
“역시나 조선학교는 우리를 상징하는 곳이잖아요. 그런 장소가 그런 대우(차별적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체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차별받고 있다는 것과 동등하다고 생각해요.” (J)

J의 말에서 조선학교가 재일코리언들에게 ‘학교’라는 하나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재일코리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는 특별한 것임을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재일의 커뮤니티를 만든다기보다 주로 조선학교의 졸업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예를 들어 학교를 위해 뭔가 기부를 할까요라거나 동기들이 모여서 후원을 할까요라거나, 그렇게 누군가가 재일의 모임을 만들거니까 들어와줘라기보다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커뮤니티처럼 되어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L)

L의 이야기는 조선학교가 그들 사이에서 연대감을 형성시키고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조선학교라는 장소가 재일코리언이 교육을 받는 곳, 즉 단순한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세대를 아울러서 그들이 모일 수 있는 하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연대의 구심점’으로서의 기능을 강하게 가지게 된 배경에는 그곳에서 가르치는 집단정신교육의 영향도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일코리언들이 조선학교와 함께 지내온 역사적 맥락을 살펴봤을 때 왜 조선학교 자체가 재일코리언을 뜻하기도 하며 구심점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선학교는 일본정부에 의해 폐쇄될 위기를 몇 번 겪었으며 그때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투쟁을 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통학정기권을 받을 권리, 전국 체육대회에 출장할 권리 등 권리를 하나 하나 획득하는 과정 또한 겪은 장소입니다. 이처럼 조선학교는 재일코리언 1세부터 현재 4, 5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투쟁과 권리획득의 과정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이며, 그들의 현재가 있을 수 있는 원인, 재일코리언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장소인 것입니다.

3-2. 재일코리언과 일본사회가 만날 때...

이름

재일코리언은 한국 이름인 본명과 일본식 이름인 통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포먼트들은 재일코리언 속에서는 큰 고민 없이 본명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본사회에 나갈 때 본명과 통명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동시에 본명을 사용한다는 것은 차별과 편견에 쉽게 노출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조선학교에서 일본학교로 진학한 인포먼트들은 대부분 자신의 신념으로 일본학교에서도 본명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본명 사용은 일본 사회에서 재일코리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본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인포먼트들도 일본에서 취업하는 과정에서 통명을 사용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남편이 재일코리언인데, 남편 지금 일본 기업에 근무하고 있고, 그 중에서 남편은 뭐 본명이 안된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사용하기 쉽도록 통명을 사용하고 있는 거죠.” (D)

어떤 이름을 사용하는지는 재일코리언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들의 선택에는 사회적 분위기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별, 편견

인포먼트들의 경험에서 이들이 일본 사회에서 겪은 "편견에서 오는 의도적인 차별"과 "무지에서 오는 편견"이 나타났습니다.

조선학교에 다녔던 인포먼트 C와 D는 조선학교 여학생이 등교 중에 교복인 치마저고리를 커터로 찢긴 사건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에서 북한 핵무기 의혹과 납치문제에 대해서 보도된 시기에 일어났으며 일본 사회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학교를 대상으로 협박문을 보내거나 학교 창문에 돌을 던지는 등 의도적인 차별이 잦았다고 합니다.

현재 20대인 인포먼트들은 의도적 차별보다 무지에서 오는 편견을 많이 언급했습니다.

“차별보다는 다들 모르는구나.” (A)
"한국인이니까 한국말 할 수 있어요?’라고 많이 묻는데 아니,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있고, 왠지 말할 수 없는 자신이 싫어지기도 했어요.” (G)

재일코리언은 사회적 흐름 즉 한일관계나 북일관계의 악화와 호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차별과 편견의 경험은 이들의 재일코리언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자신이 반대로 차별을 하는 입장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도

재일코리언이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일본사람과 구별되는 제도입니다. 재일코리언은 기본적으로 특별영주권이라는 자격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다른 외국인과 같은 대응을 받을 때가 있음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나다. 또한 역사적으로 제도가 빈번히 변했기 때문에 올드커머 중에서도 특별영주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존재합니다.또한 한 가족 안에 한국 국적자와 조선 국적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한국국적자나 특별영주자는 출입국이 편해졌는데 조선국적은 물론 제외, (중략...) 조선국적이 난민과 같은 상태예요. 불안정하고. 그래서 국적을 바꾸는 사람이 많아요. 조선국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정말 불편해요. 조부모님 호적이 한국에 있는데 조선국적이면 호적을 올릴 수 없기 때문에 부모님과 오빠는 한국국적으로 변경했고, 저와 남동생은 사상의 문제로 안 바꿨어요.” (J)

J가 가지고 있는 조선 국적은 북한 국적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조선’은 분단되기 전 조선을 뜻합니다. 따라서 조선국적자는 사실상 무국적자입니다. 편의상 한국국적으로 변경하거나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는 재일코리언도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 안에서도 국적이 다르거나, 부과되는 제도가 달라지는 일은 빈번히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제도적인 측면에서 재일코리언은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는 재일코리언으로 하여금 일본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와 재일코리언
“한국 사람들이 재일한국인이라는 거를 제대로 몰라요. (중략…) 한국에 안 살아서 민증이 없거든요. 제가 같이 은행 갔을 때 ‘민증이 없으면 안 돼요’ ‘진짜 한국인이에요?’ 라는 말을 또 들었어요.” (F)
“(한국유학)당시의 대학 선생님도 모두가 재일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니 아직도 국적 일본으로 안 했어?’ 같은 질문도 받았고, 솔직히 놀랐어요.” (I)

일본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재일코리언에 대한 이해는 현저히 부족하며 재일코리언의 존재를 인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본 연구를 통해 만난 재일코리언은 대부분 일본에 삶의 터전이 있기는 했으나 한국에 더욱 강한 귀속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계속 살아왔지만 자신의 뿌리가 있는 한국이나 조선반도에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로 보입니다. 따라서 재일코리언과 일본사회의 관계뿐만 아니라 한국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재일코리언과 관계를 맺어갈 것인지도 더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재일코리언 각자의 행위성

본 연구를 통해 만난 인포먼트는 모두 스스로가 재일코리언임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일코리언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며 이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각자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그 경향성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a. '사회적 차원의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

인포먼트 B, J, M은 모두 재일코리언과 관련된 기관에 종사하면서 사회적 차원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강한 의지를 가지고 활동을 하게 되는 원동력은 역사에 대한 인식으로 보입니다. 인포먼트 B, J, M은 모두 일본이 식민지배의 역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재일코리언을 둘러싼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b. 개인적 차원의 노력들

인포먼트 A, D, F, H, L은 개인적 차원에서 재일코리언에 대해서 알리거나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알리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재일코리언의 커뮤니티나 조선학교, 한국의 문화 등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더욱 연구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c.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이들

인포먼트 C, E, G, I는 자신의 재일코리언이라는 입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재일코리언을 “다양성”의 하나로 여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4. 결론

이번 연구를 통해 만난 인포먼트들은 때로는 재일코리언의 정체성을 숨기고 현 상황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사회적 차별에 맞서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재일코리언 정체성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선행연구를 통해 드러난 재일코리언 1~2세대의 모습에 비해 본 연구를 통해 만난 재일코리언 3~4세는 선택에 폭이 더욱 넓어졌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 사회와의 공생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들의 노력과 더불어 사회에서는 이들과 얽힌 복잡한 역사, 법적, 제도적, 사회적 위치에 대한 이해의 증진이 필요할 것입니다.

본 연구에는 Nakayama Fuka, Kawakami Yoshiko, Raisa Robinson이 함께 했습니다.

사진 출처:松崎敏朗, "朝鮮学校の高校無償化除外は「適法」 初の判決(조선학교의 고교무상화는 「적법」 첫 판결)", <朝日新聞>, 2017. 07. 19 / かっちんブログ 「堅忍不抜」, "朝鮮学校のいま 「在日」生徒たちの胸の内(조선학교의 지금, 「재일」학생들의 마음 속)", Ameba, 2017.04.28 / "朝鮮通信使400年終着地日光に行く…通信使は「元祖韓流」(조선통신사 400년 종착지 日光으로 간다...통신사는 「원조한류」, <中央日報>, 200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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