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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재택근무 ANT 2101 문화기술지: 새로운 노동환경을 마주한 재택근무자들의 이야기

문지방 출근

일에서 일상으로, 일상에서 일로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되는 현 상황 속에서 재택근무자가 자신의 노동 환경을 어떻게 감각하고 재구성하는지에 주목했습니다. ‘출퇴근’이라는 용어로 명확하게 구분지어지던 일하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 우리는 이렇게 분리된 공간을 통해 노동과 일상을 구분지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이후 공적 공간을 떠나 사적공간에서의 근무 방식의 확산은, 기존의 구분지을 수 있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일에서 일상으로, 일상에서 일로 건너가는 ‘중간지대’‘완충지대’가 사라졌기 때문이죠. 하현옥은 이를 문지방 출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노동과 일상을 한 공간에서 혹은 중첩되는 공간에서 경험하게 된 현 상황에서, 재택근무자들은 어떠한 변화를 감각하고 있을까요?

연구를 시작하며

2020년 3월, 구로에 위치한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한 이후 감염자 수가 급속도로 비대해지자 재택근무의 시행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특성상 노동자들의 재택 근무가 가능한 기업들은 회사로의 출퇴근이 아닌 자택에서 근무 형태를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고, 현재까지도 재택근무와 현장근무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재택근무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자들의 노동 공간이 회사와 공장으로 일컬어지는 공적 공간이 아닌,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적 공간으로 변모하였기 때문입니다.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일과 일상이 중첩되며 노동자들은 어떠한 변화를 감각하게 되었을까요?

노동이 이루어지는 공적 공간과 쉼이 보장되는사적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고, 재택근무로 인해 이러한 공간의 역할이 어떻게 변모하였을까요?

그리고 현장과 다른 재택근무로 노동자들은 어떤 노동 환경을 경험하고, 순응 혹은 재구성하는 하려는 시도를 보일까요?

우리의 연구는 이러한 일련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합니다.

재택근무자를 만나다

비대면 심층 인터뷰

우리는 17명의 재택근무자와 비대면으로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20-30대 피고용인으로, 다양한 형태의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연구참여자들은 재택근무를 최소 한 달 이상 경험한 자, 혹은 현재 재택근무 중인 자들로 직군, 연차, 근로 형태 등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재택근무자를 만나다

현장 참여 관찰

코로나19의 재확산 속 재택근무의 현장을 관찰하는 과정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 명의 재택근무자와는 각자의 집에서, 한 명의 재택근무자와는 카페에서 함께했습니다. 재택근무의 도입으로 이들의 집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고 변화하였는지, 어떠한 도구를 활용하여 업무에 임하는지 등을 직접 관찰했습니다. 나아가 재택근무자의 입장에서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 업무를 할 때의 분위기를 경험 할 수 있었습니다.

재택근무자를 만나다

<오늘의 일지> 작성

연구의 현장성을 보장하기 위해 재택근무자 스스로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보며 <오늘의 일지>를 작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무의식적으로 수행하였던 경험, 혹은 감상을 떠올려 이에 대해 우리와 추가적으로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일지>는 온전히 재택근무자의 시선에서 경험하고 감각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우리는 총 35개의 일지를 수행하였습니다. 그 중 <재원>은 7회 일지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으며, 그 외에도 10명의 연구 참여자들이 2회에서 4회에 걸쳐 일지를 제출하며 직접 연구 과정에 참여하였습니다.

1. 변화하다

집으로 출근합니다!

“제 방이 2층 침대였거든요. 벙커형. 1층에는 책상, 2층 침대. 그래서 출근이 사다리 타기였어요. 타고 내려와서 앉으면 출근이에요.” -슬기

“보통 8시에 (서재의) 책상으로 출근을 하고요.” -지윤

“재택근무는 사내 시스템에 로그인 시간으로 출근, 그리고 로그아웃하는 시간으로 퇴근을 확인하고 있어요.” -민정

재택근무자들은 재택근무를 경험하며 일터가 아닌, 집에서 근무 해야한다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일터로 변모한 집’이라는 변화와도 중첩되며 집으로의 출퇴근을 스스로 인지하는 연구참여자들의 모습과도 이어집니다. 현장근무 출퇴근시 존재한 집과 일터를 오가는 공간적 변화, 몸의 이동, 시간적 흐름이라는 일련의 공식이 모두 부재하게 되면서 재택근무에 적용되는 새로운 출퇴근 방식이 요구되는 것이죠. ‘출퇴근’이라는 현장근무시 적용되었던 용어의 동일한 사용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며 함의하는지에 변화를 보입니다.

재택근무자들은 더 이상 일터로의 출근이 아닌, ‘집’ 혹은 ‘책상’으로의 출근을 경험하거나, 혹은 노트북 화면을 켜는 것, 회사 내 시스템에 로그인함으로 출근했음을 인지합니다.

출근완료 ≠ 근무의 시작

이러한 출퇴근의 새로운 정의는 출근과 본격적인 근무 시작 사이에 시간적 공백을 만들어냅니다. 출근시간이 공식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이것이 자연스레 근무의 시작으로 이어졌던 현장근무와 재택근무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죠. 재택근무시 출근 여부를 회사측에 보고한다 하더라도 ‘근무의 시작’을 확인하는 경우는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연구참여자들은 각자의 방식에 맞추어 일차원적으로 출근을 완료하기는 하나, ‘출근완료=근무의 시작’으로 여겨졌던 현장근무의 공식이 깨지고 출근과 업무의 시작이 불연속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헐거운 감시망

“윗선이 보기에는 제 근태를 관리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시간이 잘 지켜졌다! 근데 그 안에 시간에서 누워있고, 딴짓도 하고 그런거죠” –슬기

“저희는 아침마다 오후마다 데일리 루틴으로 모니터링을 해서 고객사에 전송을 해서, 오전에는 그 업무를 하고 나머지는 과장 대리 요청 업무 없으면 보통 침대에 눕거나… 다 른 분들도 재택하면 늘어지게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태령

연구참여자들의 출근과 근무의 시작이 불연속하는 모습은 우리의 생각 속 재택근무자들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고도의 정보 기술을 활용한 현 정보화 사회에서 빡빡한 외부의 감시로 인해 심리적 압박을 받는 노동자의 모습이 아닌, 오히려 자유롭게 출근과 근무의 시작을 조절하고, 통제감이나 부담감은 크게 느끼지 않는 그들을 마주했습니다. 단순히 회사 내 시스템에 접속함으로 출퇴근을 확인하는 것에서 나아가, 하루 동안 수행한 업무를 일지로 작성해 업로드하거나 이를 상부에 이메일을 발송하는 등으로 살펴볼 수 있었던 외부의 감시는 대부분의 언론과 기존의 선행연구들이 묘사하는 엄격한 원격 통제와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그저 느슨하며 최소한의 장치로 존재했던 것이죠.

2. 적응하다

'대안적 공간'을 창출하다

기존의 연구들은 재택근무자를 무조건적으로 상실을 경험하는 자로 상정합니다. 현장근무자들과 비교해 보았을때 무언가를 잃고 혼란에 빠진 노동자로 그려지게 되는거죠. 그러나 이와 달리, 우리는 일종의 '대안적 공간'을 재택근무자들이 창출하고 있음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대안적 공간의 창출과 존재는 단순히 물리적 혹은 건축학적 차원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재택근무자들은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적 경계와 또 다른 공간을 상상합니다.

“식탁이 있어가지고 한 두 세달 정도는 우리의 노트북으로 식탁을 채우고 옆에 따로 상을 펴서 밥을 먹었어요. 우리는 셋이 있으니 사무실 느낌으로 일 하는 기분이었죠” -민정

두 명의 친구와 동거를 하는 <민정>은 주방 식탁에서 마치 사무실 처럼 함께 근무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무실의 대안적 공간’으로서의 속성이 주방에 부여됩니다. 이들은 현장의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전화 업무에 응대할 때 서로의 목소리가 전화에 들어가지 않도록 유의하는 일종의 사무실 에티켓을 준수합니다. 개인적인 용건일 경우 마치 사무실에서 잠깐 나가 듯 주방을 벗어나서 자신의 방으로 이동을 하며 대안적 공간의 실제적 존재는 유지됩니다.

<지연의 출근> 에서 시선을 돌려 <지연의 퇴근>까지

<지연>은 인테리어 분위기와 자신의 시선을 통해 대안적 공간을 창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연의 집에서 5시간 정도 참여관찰을 진행하며 그녀의 삶의 흔적과 시선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학원 강사인 지연은, “원래는 정말 샤워하고 잠자고 충전하는 공간”이었던 자신의 방에 변화를 주기 위해 인테리어 쇼핑몰 오늘의 집에서 약 30만 원 이상을 꾸준히 지출하였습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것은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공간들을 연결 해 놓은 패치워크와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쪽에는 책상을 중심으로 어두운 가구들, 반대쪽에는 새하얀 계열의 취침공간과 인형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더 큰 책상과 노트북, 새로운 조명과 발매트 등을 구입하여 배치하며 균질적이었던 휴식공간으로서의 방에 노동을 위한 대안적 공간을 창출하였음을 포착 할 수 있었습니다.

<시선을 통한 대안적 공간의 창출>: 지연의 시선에서 바라본 퇴근의 공간

무엇보다도 이러한 변형된 공간에 대해 지연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음이 바로 ‘시선의 사용’에서 드러났습니다. 재택근무자의 어질러진 책상은 업무를 상기시키는 "일한 흔적”으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표식을 마주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지연은 “옆으로 자서 시야가 일터 쪽으로 안” 향하는 방향으로 취침합니다. 물리적으로는 집이라는 동일한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 처리는 노동의 공간이 비노동의 공간으로 전환되는 심상을 제공합니다.

'몸'으로 적응하다

저 일하는거 맞다니까요?

대안적 공간 내부에 존재하는 재택근무자들은 그들의 몸을 통해 적응을 지속합니다. 푸코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결과물로서, 이러한 인간의 육체를 통제함과 동시에 복종하는 주체로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규율’이라 정의합니다. 각 개인의 상태에 맞는 규율화 된 주체로서의 몸을 끊임없이 형성하기에, 즉 몸은 어디에서나 존재하기에, 우리는 재택근무자들의 몸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몸을 활용하여 자신이 감각한 변화에 적응하는 재택근무자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상부는 일을 하는 걸 잘 몰라서 쉰다고 생각할까봐. 그래서 참조에 다 넣는 거지. 회신도 빨리 해서 나 쉬지 않고 있다고 알리는 거야.“ -연두

“괜히 무서운 거죠. ‘나는 진짜 2시간 동안 했는데 이걸 1시간만에 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 놀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쫄리니까 괜히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그래서 첨부할 때에도 더 꼼꼼히 확인 후에 하고.” -아라

몸을 통한 적응 중 하나는 스스로 상부의 시선을 내재화 하는 것으로, 자신의 근면함을 증명하기 위한 행위로 나타납니다. 기본적으로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했던 기존의 현장근무에서 벗어나, 시공간이 어긋나게 되며 재택근무는 소통의 공백이라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적절한 소통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불안정해진 노동구조를 감각하는 재택근무자들의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업무 연락에 대한 빠른 회신, 보다 꼼꼼한 업무 일지의 작성, 메신저 창의 즉각적인 확인 등의 행동 규율을 통해 보이지 않는 상부의 시선을 내재화합니다. 나아가 자신의 근면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행동 규율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재택근무자들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출근룩(look)은?

“회의를 할 때도 옷이 보일리가 없어요. 그래서 옷은 하나도 신경 안 썼어요.” -슬기

“상반신 정도는 와이셔츠 하나 걸어두고 그거 맨날 입고 하의는 편하게 입었고 그렇죠.” -유빈

몸을 통한 두번째 적응은 복장과 관련됩니다. 연구참여자들은 재택근무시 잠옷의 유지, 부분적 탈출, 완전한 탈출 세 가지로 나뉘어 옷차림을 갖추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집’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으로 인해 완벽하게 집옷에서 탈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집을 사무실의 대안적 공간으로 완벽히 창출하는데 한계가 발생한 것이며, 이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자신의 몸과 외부 환경 사이에 합의를 보고 타협하는 모습으로 이해 될 수 있습니다.

즉, 앞서 살펴본 감시의 내재화는 푸코의 논의에서 살펴본 복종의 주체로서의 규율에 가깝다면, 복장과 관련한 규율은 푸코의 논의와는 상반된 모습으로, 보다 느슨한 합의의 과정에 가까움을 발견했습니다.

파편화 된 시간의 재조직화

재택근무자들은 파편화 된 시간을 재조직화하며 적응합니다. 아담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의 시간은 총 근무 시간인 타임, 근무 스케쥴인 타이밍, 업무 강도 및 효율성인 템포의 조합 속에서 구성됩니다. 기존의 현장근무에서 모든 근무자들은 단일한 공간에 위치해있으며, 이에 따라 공유된 타임-타이밍-템포를 경험합니다. 반면, 재택근무시에는 각자의 공간에 있기 때문이 이들의 시간은 모두 파편화됩니다.

우리는 연구참여자들이 이로 인해 불안정성과 모호함을 느낄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매우 평온한 태도를 보였으며, 이에 대해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습니다.

“재택근무를 안 할 때는 일을 8시 반에서 5시 반까지 그리고 점심은 12시부터 1시까지 그렇게 되는데, 재택근무를 할 때는 비슷하긴한데 이제 (자녀)를 등원을 시키는 거랑 하원을 시킬 때는 한 시간 일찍 퇴근도 해요. 대신 나중에 아이를 재우고 저녁 쯤 조금 더 일을 하던가” -준명

준명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해답의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녀의 유치원 하원과 등원을 위해 퇴근을 한 시간 일찍 하는 등 근무 시간을 유연적으로 사용하며, 이로 인해 근무 시간이 아닌 늦은 밤 오후 10시에 업무 보충을 하고는 합니다. 사적 시간에 연장근무를 하고 있기에 혼란을 느낄 것이라는 관찰자의 관점과 달리, 준명은 이를 재택근무의 최대 장점으로 언급합니다.

준명 외에도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유연적으로 활용하는지 강조합니다. 우리가 발견한 중요한 지점은, 일과 일상의 혼재가 단순히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에 의해 침범만 당하는 단일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연구참여자들은 주체적으로 노동의 시간에 자신의 비노동 시간을 유입합니다.

특히 앞서 발견한 ‘감시의 내재화’는 파편화 된 시간들이 하나로 굳게 재조직화 될 수 있는 요인을 제공합니다. 감시의 내재화로 인한 불안과 이러한 불안으로 인한 자기 규율의 작용 속에서 재택근무자들은 이처럼 시간의 무질서를 방관하는 것이 아닌, 리스케줄링 (re-scheduling)하는 전략을 취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리스케쥴링으로 재택근무자들은 각자의 개인화 된 차원의 새로운 시간 질서를 따르게 되며, 그 지속 속에서 평온과 안정성을 감각합니다.

3. 표류(漂流)하다

무대의 중첩

“ 답답하다. 고여있다. 딱 그거예요. 내 방은 카페이자 사무실이자 자는 공간이고, 내 생활반경이 변하지 않아 답답했어요. 내가 이 안에서 갇혀서 흐르지 않는 느낌.” -슬기

“어쨌든 장소가 달라지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인식이 되잖아요. 그럼 평상시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계속 한 곳에만 있으니까 정체되어 있는?” -무진

변화와 적응으로 표현된 재택근무자들이 마주하는 경험은 집이라는 한정 된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재택근무자들이 겪는 변화와 적응을 포함한 모든 일련의 과정은, 결국 자신이 창출한 대안적 공간 내에서 정착하지 못한채 정처없이 ‘표류’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기존 현장근무시에는 일과 일터를 끊임없이 병행하며 공간적 변화와 흐름을 경험했던 것과 달리, 집 밖으로 흘러가지 못한채 내부에만 머물게 되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표류의 과정에서 재택근무자들은 '고여'있음을 감각합니다.

고프만의 연극학적 이론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일종의 무대이며, 각자의 각자의 개인은 최소 다섯 개, 여섯개의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 속 현재의 집이 ‘너무 많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무대가 ‘집’에 중첩됨을 발견했습니다. 한 무대의 전면에서 또 다른 무대의 전면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재충전의 과정이 수행되는 후면 무대가 요구되지만, 무대의 전면과 후면이 ‘집’이라는 공간에 혼합되며 재택근무자들은 적절한 무대 전환이 발생하지 않음을 경험합니다. 이는 대안적 공간으로 상정되었던 집이 완벽한 대안으로 변모하는 데 한계를 가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관객의 부재: 관객이 있는 곳으로 향하다

고프만에 따르면 ‘관객’이 존재해야만 개인은 무대 위에서 완벽한 연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택근무자의 공연을 관람하고 호응을 하는 관객은 부재합니다. 관객에는 직장 동료, 상사, 혹은 일면식은 없지만 함께 일하는 근무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포함 될 수 있으며 연구참여자들 또한 그 중요성을 스스로 인지합니다.

“뭐 여기서 업무 효율이 낮다, 높다는 아닌데 회사가 더 뭔가 진짜 일하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제가 진짜 일을 하는 기분 이에요” -효영

현장에서의 업무를 집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수행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효영은 진짜 일 하는 기분과 그렇지 않은 기분을 구분합니다. 우리는 평소 회사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효영>이 자신과 함께 연기를 하는 공모자, 혹은 이를 지켜보는 관객이 부재하기 때문에 상이한 느낌을 감각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부재 속에서 재택근무자들은 관객을 찾아 카페와 같은 집 외부로 이동합니다. 집에는 자기 자신 밖에 없는 반면, 자신을 둘러싼 카페의 방문자들은 관객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이죠. <무진>은 에어팟 프로로 자신의 귀를 막음과 동시에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기 때문에 카페에서 자신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무진>은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ing) 기술을 통해서 주변 관객의 흔적을 차단하면서도 이들의 존재를 기반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카페를 가고 또 이동하려면 또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되잖아요. 그러다보니 아이고 (출근) 시간이 벌써 되었네하면서 (방 책상 앞에) 앉는 것이 제 일상이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카페 갈 껄 했나 후회도 했어요.” -아라

<아라>는 재택근무를 하는 기간 동안 카페에 자주 방문하지 못했기에 자신이 카페에 갔으면 어땠을까라고 이야기합니다. 카페에서 근무를 하였다면 조금 더 집중해서 시간을 체계적으로 활용 할 수 있었을까요? <아라>에게 미련이 남은 이유는 자신의 방에는 관객이 없는 반면, 카페에는 자신의 공연을 더욱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요구 되는 관객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보았습니다.

“카페를 가봤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 몸 상 태가 아 이거는 내가 어디 안가면 무조건 잔다 싶은 거에요. 근데 결국 나갔다가 집이 편해서 다시 들어가고” -은우

그러나 <은우>가 이야기하듯 카페에는 방역수칙과 마스크 착용, 제한적인 화장실, 머무는 시간은 눈치 껏 조정해야한다는 윤리적 제한이 존재합니다. 결국 재택근무자들은 관객을 획득하는 대신, 집이 갖추었던 편리함을 누릴 수 없게 되어 이 또한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4. 다시, 현장으로

"만약에 선택지가 주어지면 현장근무가 좋으세요 재택근무가 좋으세요? 진짜 솔직하게!"

우리의 질문에 거의 모든 재택근무자들은 망설임 없이 재택근무가 아닌 현장근무를 선호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들은 왜 현장근무를 택했을까요? 주된 이유는 ‘재택근무의 비효율’이었습니다. 이를 감각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나태함’과 ‘재택근무 환경의 불완전함’으로 구분되어 나타났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적응, 그리고 표류의 현상과 이어지며, 결국 적응의 불완전함으로 나타났던 표류의 모습이 그들을 재택근무가 아닌 현장근무로 향하게 만든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현장근무와 재택근무가 병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현장근무가 재택근무의 연장으로, 혹은 재택근무가 현장근무의 연장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연구에 참여한 재택근무자 중 일부는 업무량이 많을 때면 재택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가서 일을 처리하거나, 급한 전화가 오면 회사로 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선택 가능한 대안이 두 가지 이상으로 존재하고 현장근무와 재택근무가 서로의 연장선상으로 채택되는 이상, 완전히 독립적인 재택근무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죠.

5. 결론

마지막으로 우리는 본 연구를 통해 제시한 네 가지 지점, 즉 변화-적응-표류-다시 현장으로의 연관성을 함께 고려하여 이야기하고자합니다.

재택근무자들은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적응을 시도하고, 자신에게 최적화된 방신으로 근무 하기 위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창출한 대안적 공간 안에서 혼란과 갑갑함을 경험하기도 하고, 부재하는 관객을 찾아 나서기도 하죠.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의 직장 동료들에게 호소하지 못했던 어려움, 혹은 <연두>의 말을 빌리자면 “심장이 화가 난 ” 순간들을 일지와 인터뷰를 통해 우리에게 털어 놓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는 재택근무자들의 행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이러한 일련의 해석은 이분법적으로 긍정과 부정, 장점과 단점으로 분리 될 수 없음을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은 모순적이거나 서로에 대한 반박을 가할 수 없습니다.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욱 강력한 영향력과 가치를 지니기에 재택근무자들이 무조건적인 만족을 느끼거나, 그 반대로 인해 무조건적인 피로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다시 현장으로’돌아가는 현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들의 모습은 기존의 적응 행위와 고분고투가 무의미함을 결코 의미하지 않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며 자신의 시간을 유연적으로 사용 할 수 있음에 느낀 기쁨이 무효화 되는 것도 아니며, 근면성실하며 충성스러운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연구자들의 질문에 의도적으로 현장근무를 택한 위선(僞善) 또한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재택근무자들의 존재는 이러한 다각적인 지점들이 모두 역동적으로 관련지어지며 서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구성됨에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연구자 소개

2019.04.01. 송도에서 고등학교 교복 입고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김이현. 김지영. 이규빈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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