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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활엽수 숲, 다음 승자는? 백두대간 에코 트레일 | 12~14구간 식생

글 월간산 신준범 기자 / 사진 주민욱 객원기자

충분한 강수량과 강력한 햇볕으로 초본류 폭발적인 성장세

민주지산 삼도봉 구간은 초본류의 천국이다. 산에 사람이 꾸준히 다니면 그곳은 자연스레 식물이 줄어들면서 산길이 된다. 사람의 발길에 의해 땅의 흙이 굳어 풀이 자라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백두대간 삼도봉 구간은 예외다. 아무리 인기 있는 산이 아니라 해도 대간길이니 못 해도 한 달에 여러 사람이 지나갈 텐데, 초본류의 성장이 어찌나 왕성한지 산길을 완전히 삼켜버린 곳이 많았다.

식물은 물과 햇볕과 이산화탄소로 광합성을 통해 성장한다. 햇볕만 많아도 안 되고 물만 많아도 안 되는데, 폭염의 강력한 햇살과 장마철 충분히 내린 비로 땅이 수분을 머금고 있어 초본류가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이다. 많은 비와 뜨거운 뙤약볕은 등산인들에겐 위협적인 것들이지만, 식물들의 입장에선 천군만마 같은 아군인 것이다.

목본류도 못지않게 왕성하다. 대간의 주인공이라 불릴 정도로 가장 많이 서식하는 신갈나무를 비롯 물박달, 조록싸리, 참싸리, 철쭉, 진달래, 소나무, 고광나무, 일본잎갈나무, 미역줄나무, 쇠물푸레, 거제수, 떡갈나무, 갈참나무, 잣나무, 개옻나무, 고추나무, 국수나무, 굴참나무, 박쥐나무, 박달나무, 붉나무, 사스래나무, 산딸기, 산딸나무, 산수국, 산벚나무, 산사나무, 산초나무, 쪽동백, 층층나무, 당느릅나무, 떡버들, 병꽃나무 등이다.

산은 그대로인 것 같아도 늘 변한다. 나무를 통해서 보면 백두대간 삼도봉 구간은 중년의 숲이다. 빈 땅이 있으면 처음에 한해살이풀이 점령한다. 이후 여러해살이풀이 한해살이풀을 밀어낸다. 그 다음엔 작은 나무들이 들어선다. 그리곤 힘 센 키 큰 나무들이 자리 잡는다. 우리 산을 보면 소나무가 처음 자릴 잡는 대표적인 큰 나무다. 땅이 척박해도 잘 자라고 햇볕을 좋아한다.

소나무 왕국은 오래가지 못한다. 흙이 비옥해지면서 왕성한 활엽수인 참나무류가 들어서기 시작한다. 대간을 대표하는 참나무인 신갈나무는 키 큰 소나무들 사이에서 자기만의 세력을 빠르게 키워 나간다. 넓은 잎으로 햇볕을 쓸어 담듯 광합성해 빠르게 자라, 결국 소나무를 넘어선다.

이때부터 소나무는 천천히 죽음을 향해 간다. 햇볕을 좋아하는 극양수인 소나무는 그늘 아래서 살 수 없다. 신갈은 강한 자들 사이에서도 비위를 맞추며 어떻게든 살아남지만, 소나무는 한 번 사는 인생 폼생폼사다.

결국 활엽수가 산을 점령하면, 활엽수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일어난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는 무한경쟁의 숲이 된다. 이때 홀연히 나타나 천하무적 같은 신갈을 제압하는 나무가 서어나무다. 신갈의 넓은 잎이 지배하는 그늘 아래에서도 서어나무는 꾸준히 자라며 힘을 키운다. 어느 정도 자라서, 햇볕을 확보하면 참나무류보다 훨씬 왕성하게 자라 숲을 지배한다. 숲의 천이 과정 중 마지막 단계이며, 극상림이라고 한다.

민주지산 삼도봉 구간은 극상림은 아니다. 활엽수의 무한경쟁 단계다. 이제 막 소나무를 제거한 신갈의 전성시대인 것이다. 서어나무가 많은 극상림은 지난 대간 구간 중 지리산 일부분이 여기 속한다. 일제 강점기와 6·25, 가난한 시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숲이 훼손되었기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서 이 단계까지 온 셈이다.

자연은 공식대로 되지 않는다. 꼭 서어나무가 최후의 승자라는 법은 없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토양의 산성화, 강수량 부족 등 기후 변화로 서어나무도 자손을 잘 번식시키지 못하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그러니 무한경쟁의 활엽수 숲, 다음 승자는 누가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