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낙원상가, 인류학적으로 낯설게 보다

지금까지 이런 연구는 없었다!

이것은 건축 연구인가, 사회 연구인가?

건축도 사회도 아닌, 건축 사회 공간 속 '불평등'에 대해 알아보자

현장방문 12차례, 시장·악기상인, 경비원, 대일건설 대표 등인포먼트 인터뷰 10명, 상가 이미지 그리기 8명, 층별 카테고리화·모델링 작업

총 31시간의 삶을 같이하다!

'건물' 에서의 불평등

건물의 구성은 불평등을 반영한다

문의 크기·형태·재질 차이에서의 불평등

문은 특정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두 공간 사이의 경계이며, 경계의 크기·형태·재질은 각각의 공간에 대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지하시장으로 가는 문은 철창으로 되어 있으며, 총 4개가 있다. 그 중 한 곳을 제외하고는 어둡고 비좁아 그 곳이 입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조차 힘들다.

반면 1층에서 2층을 향하는 4개의 문은 투명한 유리문이며,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고 상가 양 옆에 위치해 가시성이 높다.

한편 5층에는 자동 여닫이문이 있다. 자동문은 단순히 건축의 세련됨과 차별성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다. 일반적인 문보다 설치가 간편하며 가격도 저렴한 자동문은 편의시설뿐만 아니라 위생시설,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복지시설로도 볼 수 있다.

자동문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상주하는 지하시장에 설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자동문은 5층 공간에만 설치되어 있고, 이러한 문의 크기와 형태적 차이는 힘과 권력이 반영된 불평등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철은 유리와 달리 시선의 통과를 차단한다. 이는 지하에 위치한 지하시장을 더욱 '립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점포의 경계 및 사무실의 위치에서의 불평등

낙원상가 지하시장은 식당, 반찬가게, 포목점,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점포들은 오픈형 구조이기 때문에 경계가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지 않다. 상가 2층과 3층에도 유리벽으로 된 경계가 뚜렷한 점포가 있는 반면, 복도 중앙에 별다른 경계가 없이 존재하는 점포도 있다.

또한 낙원상가에는 대일건설 사무실과 낙원상가주식회사 사무실이 있다. 낙원상가 내의 상점들은 이 두 회사가 양분하여 소유하고 있고, 따라서 공식적으로 두 회사는 낙원상가에 동일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복도 중앙에 있는 점포들은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스러웠고,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경계가 뚜렷한 개별 점포들에서는 훨씬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호준, 5.27 필드노트 발췌)

앞서 언급한 경계 유무의 차이는 상인들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있어서도 인식의 위계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인식의 위계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월세의 차이다. 구체적인 차액을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경계 속의 공간은 세가 비싼 반면 경계 밖의 공간은 상대적으로 세가 저렴했다.

또한 두 사무실이 위치한 장소의 차이는 두 회사 사이의 '실질적인 위계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낙원주식회사 사무실은 출입이 자유로운 악기상점 3층에 위치한 반면, 대일건설 사무실은 상대적으로 출입에 제한이 따르는 5층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개수 및 관리상태 차이에서의 불평등

지하시장은 악기상가보다 방문객들의 수가 더 많다. 지하시장에서는 이른 시간부터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노인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시장에 위치한 화장실은 하나뿐이다.

반면 상가 내부에는 층별로 최소 2개 이상의 화장실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지하시장 화장실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변기와 벽면의 인테리어는 과거 낙원상가가 처음 건설되었을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악취도 심했다.

반면 상가에 있는 화장실 내부의 변기와 세면대는 2010년도에 전반적인 리모델링이 이루어져 현대적이며 세련된 형태를 보였다. 벽에 그려진 벽화는 화장실의 용도와 달리 화려한 느낌마저 들었다.

정보의 양과 도달 정도 차이에서의 불평등

층별, 주변 정보 등을 얼마나 자세히 설명해주는지가 그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이 곧 불평등이다

상가의 2, 3층에는 출입구와 화장실, 지하철 타는 곳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처음 상가를 찾은 손님들도 길을 헤맬 일이 없다.

반면 지하시장에는 출입구 및 화장실 안내 등의 표지판이 부족하다. 실제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본 연구조는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지하시장 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

'사회' 에서의 불평등

누가 건물 속에서 사회를 이루는지, 누가 잘 조직된 사회적 관계에 참여하는지가 곧 불평등의 반영이다

낙원 홀 미팅과 플리마켓 참여 집단에 따른 '중심'과 '주변'의 분리와 위계화

미팅을 통해 실제로 상가 내부적으로 많은 부분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팅에 참여하는 집단은 상가 내에서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2, 3층 악기 상인이었으며, 주변으로 인식되는 지하시장 상인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지하상가 ㄴ국밥집 할머니) "사무실에서는 모임에도 나오고 우리들끼리 뭘 만들라고 하는데 그런걸 해야하나 싶지... 미팅 그런거는 악기상인들이 많이 갈껄... 아마 금요일인가 목요일에 했을걸“

또한 플리마켓은 낙원상가 50주년을 기념하고 상가 활성화를 위한 것이었지만, 행사를 주도하고 직접 참여한 집단은 중심의 위치에 있는 대일건설, 악기상점 상인들이었다.

낙원상가의 초기 정체성은 지하시장에서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낙원상가의 정체성이 지난 50년 동안 악기라는 것에만 고정되어 집중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플리마켓이 진행되던 동시간대에 행사가 진행되는 4층과 지하층에서 확연한 온도 차이가 있었다.

낙원 홀 미팅과 플리마켓 진행 과정만 보더라도 대일건설, 낙원악기상가 주식회사, 번영회로 이루어진 중심 집단과 지하시장 상인들로 이루어진 주변 집단으로 위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지하상가 상인 집단은 중심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지워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낙원상가에 대해 위계적인 위치에 있는 서울시와 종로구

낙원상가 외부적으로 관계를 맺는 집단은 서울시 특히 종로구다. 상가 주변 도시재생 사업, 악기관련 프로그램 및 영화관 운영비 지원 등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서울시는 낙원상가와 관계 맺는 1순위 외부집단이다. 이때 서울시가 중심의 위치에 있으며 낙원상가가 주변에 자리하게 된다.

(대일건설 대표님) “도시재생 사업 관련해서 중단된 구역은 구청장님이 보시기에 마음에 안 들어서... 구청장이 태클을 걸었다. ‘이미 착공했는데 왜 이제야 이야기하냐’고 싸우기도 했다. 결국 지금 재설계하는 단계에서 중단되어 있다”

기존에 계획되고 일부 진행되기까지 했던 낙원상가 주변 도시재생사업은 현재 중단되어 있다. 다른 어떤 이해관계가 아니라 중심 집단의 변심에 의해 한 순간에 도시재생사업이 보류되는 것만 보더라도 낙원상가에 대한 서울시의 권력과 보이지 않는 위계를 읽어낼 수 있다.

물론 서울시와 낙원상가 간의 관계가 일방적인 성격만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도시재생사업 진행과정에 있어서 서울시의 의견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일건설회사, 낙원악기상가 주식회사와 같은 중심 집단과 지하상가 시장과 같은 주변 집단 간에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위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넓은 의미의 사회적 관계로 보았을 때 서울시, 종로구가 중심이 되며 낙원상가는 주변에 위치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에도 지하상가 시장 집단은 중심에서 소외되며, 결국 외부적인 위계가 내부적 위계를 공고히 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건물, 사회 그 안의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층별 노동 환경에서 드러나는 불평등

지하시장 상인들 같은 경우 노동시간이 정해져있지 않고 식사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또한 지하는 비닐천장, 후라이팬, 주걱, 걸레 등 오래된 주방용품을 사용하며 주로 폴더 폰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1층 경비원들의 경우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2시간씩 노동시간은 정해져 있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전기실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등 열악한 노동조건은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2, 3층 및 5층 사무실 사람들은 노동시간 및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는 편이다. 또한 악기상점의 경우 한 가게 당 기본적으로 2대 이상의 컴퓨터를 사용하며 최소한 1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특히 5층 대일건설 대표님의 경우 아이맥, 아이폰XS, 소니 전자 페이퍼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하시장 ㅊ국밥집 할머니) “일하는 시간은 정해진건 아니고 늦게까지 할 때도 있고 하지…밥은 2,3시에 쫌 한가할 때 먹거나 하고”

(1층 경비원) “하루 12시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고 야간조는 교대로하고…일하면서 사고날 뻔한 적도 많죠. 1층에 억지로 주차하고 그런게 있으니까. 근무시간은 계속 서있고 쉴 수 있는 공간은 5층 말고는 따로 없어요”

노동 규정 및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지하시장 상인들, 1층 경비원과 2,3층 및 사무실 간에 위계적인 차이가 존재함을 읽어낼 수 있다.

지하의 늙음과 지상의 젊음 지하의 여성과 지상의 남성 그 안에서 드러난 불평등

식당을 운영하는 지하시장 상인들은 90%이상이 70~80대 여성이다. 반면 악기상가 상인 및 사무실 직원들은 30~60대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악기상가에도 여성 상인들이 있었지만 남성과 비교했을 때 극소수이다.

그렇다면 왜 낙원상가라는 하나의 공간 내에서 층별로 젠더와 연령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과거 여성과 남성의 일에 대한 기대값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청소와 요리같은 가정적인 일을 여성에게, 사업과 같은 대외적인 일은 남성에게 기대되었다.

현재 낙원지하시장과 낙원악기상가 종사자의 젠더 차이는 이러한 기대값을 반영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시장에서 식료품을 판매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여성이, 상가에서 악기를 판매하고 영업을 하는 것은 남성이 맡아 왔던 것이 고착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연령에 따라 공간은 서로 다른 위계를 만들어 낸다

결국 층별로 차이나는 젠더와 연령은 일에 대한 기대값과 그것에 부여된 사회적 가치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처음부터 차이를 보였던 시장과 상가의 젠더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착화되었다. 또한 대물림이 없는 시장 상인들의 연령은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반면, 대물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상가 상인들의 연령은 젊어진 것이다.

문제는 건축, 사회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다.

공간은 사람들 사이에 '위계·불평등'을 반영한다.

건축은 공학이지만, 건물은 사회다. 사회는 위계를 가지고 있으며, 위계로 인해 건축물의 형태는 변화한다. 문, 화장실, 기둥, 간판, 조형물 등은 그 건물 속 위계를 나타내는 나이테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공간에는 많은 사각지대가 놓여져 있다. 그것은 사실 사람들 삶에 존재하는 깊은 불평등이 응축되어 있는 공간이다.

연구를 통해 기존의 비가시적이며 인식에서 배제되어 왔던 공간을 논의함으로써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건물, 사회, 사람들 사이에서 인식의 폭을 넓혔다면 공청회, 리모델링과 같은 활동에서도 다양한 새로운 개선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쿠키영상 - 낙원상가 어디까지 가봤니?

Report Abuse

If you feel that this video content violates the Adobe Terms of Use, you may report this content by filling out this quick form.

To report a copyright violation, please follow the DMCA section in the Terms of 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