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연구는 없었다!
이것은 건축 연구인가, 사회 연구인가?
'건물' 에서의 불평등
건물의 구성은 불평등을 반영한다
문의 크기·형태·재질 차이에서의 불평등
문은 특정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두 공간 사이의 경계이며, 경계의 크기·형태·재질은 각각의 공간에 대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지하시장으로 가는 문은 철창으로 되어 있으며, 총 4개가 있다. 그 중 한 곳을 제외하고는 어둡고 비좁아 그 곳이 입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조차 힘들다.
반면 1층에서 2층을 향하는 4개의 문은 투명한 유리문이며,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고 상가 양 옆에 위치해 가시성이 높다.
한편 5층에는 자동 여닫이문이 있다. 자동문은 단순히 건축의 세련됨과 차별성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다. 일반적인 문보다 설치가 간편하며 가격도 저렴한 자동문은 편의시설뿐만 아니라 위생시설,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복지시설로도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경계 유무의 차이는 상인들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있어서도 인식의 위계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인식의 위계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월세의 차이다. 구체적인 차액을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경계 속의 공간은 세가 비싼 반면 경계 밖의 공간은 상대적으로 세가 저렴했다.
또한 두 사무실이 위치한 장소의 차이는 두 회사 사이의 '실질적인 위계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낙원주식회사 사무실은 출입이 자유로운 악기상점 3층에 위치한 반면, 대일건설 사무실은 상대적으로 출입에 제한이 따르는 5층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개수 및 관리상태 차이에서의 불평등
지하시장은 악기상가보다 방문객들의 수가 더 많다. 지하시장에서는 이른 시간부터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노인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시장에 위치한 화장실은 하나뿐이다.
반면 상가 내부에는 층별로 최소 2개 이상의 화장실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지하시장 화장실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변기와 벽면의 인테리어는 과거 낙원상가가 처음 건설되었을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악취도 심했다.
반면 상가에 있는 화장실 내부의 변기와 세면대는 2010년도에 전반적인 리모델링이 이루어져 현대적이며 세련된 형태를 보였다. 벽에 그려진 벽화는 화장실의 용도와 달리 화려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회' 에서의 불평등
누가 건물 속에서 사회를 이루는지, 누가 잘 조직된 사회적 관계에 참여하는지가 곧 불평등의 반영이다
낙원 홀 미팅과 플리마켓 참여 집단에 따른 '중심'과 '주변'의 분리와 위계화
미팅을 통해 실제로 상가 내부적으로 많은 부분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팅에 참여하는 집단은 상가 내에서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2, 3층 악기 상인이었으며, 주변으로 인식되는 지하시장 상인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지하상가 ㄴ국밥집 할머니) "사무실에서는 모임에도 나오고 우리들끼리 뭘 만들라고 하는데 그런걸 해야하나 싶지... 미팅 그런거는 악기상인들이 많이 갈껄... 아마 금요일인가 목요일에 했을걸“
또한 플리마켓은 낙원상가 50주년을 기념하고 상가 활성화를 위한 것이었지만, 행사를 주도하고 직접 참여한 집단은 중심의 위치에 있는 대일건설, 악기상점 상인들이었다.
낙원상가의 초기 정체성은 지하시장에서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낙원상가의 정체성이 지난 50년 동안 악기라는 것에만 고정되어 집중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플리마켓이 진행되던 동시간대에 행사가 진행되는 4층과 지하층에서 확연한 온도 차이가 있었다.
낙원상가에 대해 위계적인 위치에 있는 서울시와 종로구
낙원상가 외부적으로 관계를 맺는 집단은 서울시 특히 종로구다. 상가 주변 도시재생 사업, 악기관련 프로그램 및 영화관 운영비 지원 등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서울시는 낙원상가와 관계 맺는 1순위 외부집단이다. 이때 서울시가 중심의 위치에 있으며 낙원상가가 주변에 자리하게 된다.
(대일건설 대표님) “도시재생 사업 관련해서 중단된 구역은 구청장님이 보시기에 마음에 안 들어서... 구청장이 태클을 걸었다. ‘이미 착공했는데 왜 이제야 이야기하냐’고 싸우기도 했다. 결국 지금 재설계하는 단계에서 중단되어 있다”
기존에 계획되고 일부 진행되기까지 했던 낙원상가 주변 도시재생사업은 현재 중단되어 있다. 다른 어떤 이해관계가 아니라 중심 집단의 변심에 의해 한 순간에 도시재생사업이 보류되는 것만 보더라도 낙원상가에 대한 서울시의 권력과 보이지 않는 위계를 읽어낼 수 있다.
물론 서울시와 낙원상가 간의 관계가 일방적인 성격만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도시재생사업 진행과정에 있어서 서울시의 의견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건물, 사회 그 안의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층별 노동 환경에서 드러나는 불평등
지하시장 상인들 같은 경우 노동시간이 정해져있지 않고 식사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또한 지하는 비닐천장, 후라이팬, 주걱, 걸레 등 오래된 주방용품을 사용하며 주로 폴더 폰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1층 경비원들의 경우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2시간씩 노동시간은 정해져 있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전기실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등 열악한 노동조건은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2, 3층 및 5층 사무실 사람들은 노동시간 및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는 편이다. 또한 악기상점의 경우 한 가게 당 기본적으로 2대 이상의 컴퓨터를 사용하며 최소한 1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특히 5층 대일건설 대표님의 경우 아이맥, 아이폰XS, 소니 전자 페이퍼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하의 늙음과 지상의 젊음 지하의 여성과 지상의 남성 그 안에서 드러난 불평등
식당을 운영하는 지하시장 상인들은 90%이상이 70~80대 여성이다. 반면 악기상가 상인 및 사무실 직원들은 30~60대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악기상가에도 여성 상인들이 있었지만 남성과 비교했을 때 극소수이다.
그렇다면 왜 낙원상가라는 하나의 공간 내에서 층별로 젠더와 연령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과거 여성과 남성의 일에 대한 기대값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청소와 요리같은 가정적인 일을 여성에게, 사업과 같은 대외적인 일은 남성에게 기대되었다.
현재 낙원지하시장과 낙원악기상가 종사자의 젠더 차이는 이러한 기대값을 반영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시장에서 식료품을 판매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여성이, 상가에서 악기를 판매하고 영업을 하는 것은 남성이 맡아 왔던 것이 고착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