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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구간 웅이산 백두대간 에코트레일. 07

글·월간산 신준범 기자 / 사진·월간산 주민욱 기자

추풍령~작점고개~용문산~웅이산~큰재~백학산~개머리재 구간

지극히 겸손한 산줄기. 백두대간은 추풍령을 지나면서 웅장한 갑옷을 벗어던지고 200m대까지 몸을 낮춘다. 몰락한 왕조처럼 낮디 낮은 산줄기가 되어 사람과 어우러진다. 도로에, 밭에, 채석장에, 쓰레기에 제 몸을 내어주고, 가난한 맥을 이어간다.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조차 <택리지>에서 ‘낮고 평평하여 시골 살기에는 알맞으나 산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낮다하여 산이 아니겠는가. 모두가 막 대한다고 하여 백두대간이 아니겠는가. 야산이라도 나무를 품을 줄 알고, 꽃 피고 새 운다. 가난한 가장이라 해서 아버지가 아니겠는가. 이 낮고 볼품없는 산줄기가 나라의 첫 번째 산줄기임을 잊어선 안 된다.

비가 온다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산행 거리가 짧고 우중산행이 익숙한 탓이다. 익숙한 이들이 추령평에 모였다. 변재수·김찬일 블랙야크 마운틴 셰르파와 등산트레킹지원센터 박용희 국장과 민미정씨가 함께한다. 새 얼굴 김윤희 셰르파와 인사를 나누고 곧장 종주에 나선다.

첫째 날 추풍령에서 작점고개까지 9km, 둘째 날 개터재까지 17km, 셋째 날 개머리재까지 11km를 가기로 했다. 점심이 훌쩍 지난 시간, 고가도로가 지나는 복잡한 교차로에서 카리브모텔 옆길로 든다. 대간 주능선에 놓인 모텔 이름이 ‘카리브’라니, 뭔가 어색하면서도 이 길이 끝나는 곳에 지상낙원 같은 카리브해변이 나타날 것만 같다.

이번 구간은 야산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시골 뒷산 같은 낮은 산이 이어진다. 그러나 야산에 담긴 수더분한 매력이 있다.

추풍낙엽처럼 땀이 떨어진다. 시작부터 곧장 고도 100m를 높여 금산 정상에 선다. 정상에 웬 출입금지 로프를 쳐 놓았나 했더니 채석장으로 산 절반이 깎여나갔다. 100m가 넘는 인공절벽, 싸늘하다. 일제는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쇠못을 박았는데, 우리는 백두대간 주능선을 통째로 없애고 있다. 누가 더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 등산인을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몰면서, 정작 대기업과 정부의 대규모 파괴 앞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일부 환경단체들도 각성해야 한다.

졸참, 갈참, 신갈, 굴참나무와 세력이 점점 약해져가는 소나무, 인공조림한 스트로브 잣나무가 묘한 균형을 이루며 숲을 이뤘다. ‘들기산’ 팻말이 있는 502m봉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떡갈나무들에 포위당했다.

소나무가 약해지는 틈을 놓치지 않고 도인의 수염 같은 노간주나무가 느리지만 견고하게 자리고 있다. 느리게 자라지만 그늘에서도 참을 줄 알고, 양분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만족하는 노간주의 지혜로움을 이번 구간 내내 볼 수 있었다.

임도가 곡선을 그리며 도는 사기점고개를 지나는데 어둑하다. 이 고개 남쪽의 사기점리는 옛날 사기를 구워 팔던 마을이었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한다. 어둠이 걸음을 앞질러간다. 난함산 임도를 만나는 곳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오는 밤, 산중 임도를 걸어서인지 분위기가 음침하다. 이때 나타난 불빛, 대형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된 정신병원이다. 일행들은 반갑기보다 꺼림칙해 한다. 도로가 지나는 작점고개에서 우중산행을 끝내고 숙소로 향한다.

밤새 삼킬 듯 비가 왔다. 아침엔 거짓말처럼 하늘이 열렸다. 솜사탕처럼 풍성한 구름이 농도 짙은 파란 하늘을 유영한다. 장거리 산행하기에 어울리는 날씨, 진탕 땀 쏟아보자고 파이팅 하고 입산한다.

용문산龍門山(710m) 오름길, 예상했지만 경치라곤 하나도 없는 무뚝뚝한 사내 같은 산이다. 양평 용문산과 이름만 같을 뿐 기원은 다르다. 1800년 무렵 박송朴松이라는 유생이 중국의 용문산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였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은 용문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가 많다고 한다. 흔히 기피시설로 인식되는 정신병원과 기도원이 있어서다. 용문산기도원은 여느 기도원에 비해 규모가 상당하다. 1947년 나운몽 목사가 애향숙愛鄕塾이란 이름으로 세운 한국 개신교 기도원의 원조 같은 곳이다.

경치 없는 빽빽한 숲 덕분에 산행에만 몰입한다. 오르내림도 완만해 무좌골산을 어렵지 않게 넘어 용문산 정상에 닿았다. 모처럼 너른 헬기장에서 하늘이 열린다. 나무가 높아 시선은 멀리 가 닿지 못한다.

광적인 기도 소리가 온 산에 울려

아! 고! 오! 오!” 처음엔 개 짖는 소리인줄 알았다.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온 산에 울린다. 기도원에서 들려오는 신자들의 기도 소리가 상당하다. 일반적인 기도 소리라기보다는, 고함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김천 사람들이 용문산에 오길 꺼린다는 이곳 토박이 김찬일 셰르파의 말이 이해가 간다.

길지 않은 오르막을 올려치자 처음 경치가 터지는 웅이산熊耳山(794.1m) 정상이다. 이번 구간 최고봉답게 드문드문 먼 풍경이 드러난다. 갇힌 숲 속에 있다 나오니 딴 세상 같다. 구름이 고요하게 흘러가고 주변 산줄기가 순한 선을 그리며 펼쳐진다. 초록과 파랑으로 그려낸 풍경이 착하게 느껴진다.

쇠락하는 소나무와 성장하는 굴참나무가 있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산 능선길을 걷는다.
효곡리의 동물이동통로. 윗왕실마을 버스 종점에서 가까워 중간기점으로 끊어도 불편이 없다

이 산은 금강과 낙동강을 가르는 산줄기라 국수봉菊水捧으로도 불렸으나 2012년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웅이산으로 확정·고시했다. 산 아래 마을에 ‘곰실’이라는 명칭이 있고 산정에 기우제를 지내던 웅신대熊神堂 등의 지명이 있어 공식 명칭으로 등재됐다고 한다. 흔한 이름인 국수봉보다는 훨씬 귀여운 느낌이 드는 ‘곰 귀 산’이다.

쇠물푸레, 개옻나무, 신나무가 수더분하게 늘어선 낮은 산등성이를 내려서자 상주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는 큰재다. 깔끔한 잔디밭과 신경 써서 관리한 조경수들과 휴양림 숲속의 집 같은 숙소가 늘어선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에서 산행을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야산 같은 산등성이에 든다.

솔향기가 더위에 멍해진 머리를 깨우고, 솔잎은 푹신하다. 속도 내기 좋은 숲, 사진 찍고 기록하느라 느린 종주대가 모처럼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몰아붙인다. 화려한 경치가 없어 조금만 멋있는 나무와 꽃이 나오면 멈춰 서서 구경한다. 능선에서 보기 어려운 아름드리 느티나무 세 그루가 승천을 꿈꾸는 잠룡처럼 뿌리를 내렸다. 경치 없는 낮은 높이의 백두대간이 준 선물은 평소 지나쳤던 것들, 평범한 숲의 재발견이다.

9시간 넘게 산행이 계속되자 하산길이 있는 안부를 만날 때마다 내려가고 싶어 하는 일행들의 마음이 얼굴에서 묻어난다. 낮은 산인 탓에 능선 언저리에 밭과 인가가 있어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 오후 6시, 비로소 개터재에서 대간을 벗어난다. 보통 구간 기점으로 끊는 곳이 아니지만, 종주 마지막 날 산행거리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마지막 날도 쾌청하다. 마을 어른들이 심었을 법한 밤나무와 감나무를 따라 다시 대간에 붙는다. 마을과 고도 차이가 100m도 되지 않고 시멘트 임도가 나있어 산등성이에 쉽게 올라선다. 이번 구간에서도 대간꾼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종주를 하기에는 여전히 무더운 날씨, 인기 없는 야산 구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산행의 클라이맥스인 백학산(615m)도 힘들지는 않다. 땀을 쏟긴 하지만 여느 험산처럼 가파르지 않다. 부드럽게 고도를 높이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아담한 표지석과 벤치는 기념사진 찍고 점심 먹기에 제격이다. 짙은 숲 한편, 북서쪽으로 하늘이 열린다. 겹친 산등성이들이 드라마 예고편처럼 손짓한다. 가야 할 대야산, 윤지미산, 속리산이 ‘언제 여기 올 거냐’고 물어보는 것만 같다.

햇살과 바람이 들려주는 야산의 가치

개머리재를 향해 완만한 능선을 빠르게 주파한다. 야산답게 낮아서 부담 없고, 아무도 없어 조용하다. 막아서는 국립공원 직원도 없고, 위험한 암릉도 없고, 허풍 같은 전설도 없다. 귀품 있는 구상나무나 주목도 없고 막 자라는 굴참나무와 리기다소나무가 있을 뿐이다. 편안하다. 지켜야 할 모든 것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공간에 놓인 기분. 무게감 없이 가볍게 떨어지는 햇살과 바람만이 야산의 진가를 알고 있다.

개머리재에 닿자 너른 포도밭과 복숭아밭이 대간을 가득 메웠다. 9월의 과수원답게 과즙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맛깔스럽다. 떨어진 과실이라도 주워 먹었다간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돈을 내고 사먹으려는데, 주인장이 대간꾼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비닐에 과실을 담아 준다. 하긴 우리 같은 대간꾼이 한둘이었을까. 개머리재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배낭을 내려놓고, 완주의 개운함을 누린다. 떠들썩하게 웃으며 복숭아를 먹었다. 아! 과육이 이렇게 달콤하다니, 이 맛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1. 개머리재로 내려서는 길의 포도농장. 주인장이 내어주는 포도를 맛보았다. 김천·상주는 유명 포도농산지답게 꿀맛이었다. 2. 산행 둘째 날 작점고개에서 출발 전, 파이팅을 외치는 종주팀. 3. 대간길을 걷는 김윤희 셰르파와 변재수, 김찬일 셰르파. 전반적으로 완만해 속도 내기 좋은 산길이 이어진다

웅이산 구간 종주 가이드

용문산과 웅이산, 백학산 오르막이 숨을 헐떡이게 하지만, 그래도 지나온 구간에 비하면 비탈이 짧고 완만한 편이다. 속도에만 집착해 빠르게 걷는다면 하루에 20km 이상 뽑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의외로 덤불이나 수풀도 적다.

길찾기 주의해야 할 곳은 간간이 있다. 추풍령에선 카리브모텔 옆길로 직진하면 표지기가 주렁주렁 달린 산길에 닿는다.

난함산에서는 능선에 올랐다가 꺾어서 가는 것이 맞지만, 대체로 난함산 정상부에 가지 않고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회룡재와 개터재는 지도에 임도 표시가 되어 있지만, 등산로에 가까운 비포장길이라 차량이 고개 정상까지 가기는 어렵다. 다만 마을이 가까워 탈출로로 이용하기엔 무리가 없다. 도로를 만나는 곳은 추풍령, 작점고개, 큰재, 개머리재다. 총 37km이며 추풍령에서 큰재까지 20km, 개머리재까지 17km를 이틀에 나눠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숙식

추풍령할매갈비(054-439-0150)는 추풍령의 별미로 손꼽힌다. 고추장양념 돼지갈비(9,000원)와 잔치국수(3,000원)를 맛보지 않으면 추풍령 구간을 제대로 탔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고개를 기점으로 김천방면 본점과 영동 방면 분점이 있다.

이밖에도 보리밥전문 제일식당(043-742-3626), 양평뼈다귀해장국(043-745-3082) 등이 추풍령역 앞에 있다.

숙소는 큰재의 상주 백두대간생태교육장(054-536-0914)이 있다. 주능선에 있으며 시설이 깔끔해 숙소로 안성맞춤이다. 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단체동과 4인 가족실이 있다.

상주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영유아 숲 체험과 대간꾼 숙소로 안성맞춤!

백두대간 종주자들은 대간 주능선에 있는 이 교육장을 가로질러야만 한다. 남원이나 거창의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달리 대간을 타는 사람이면 누구나 거치도록 되어 있다. 보는 눈이 많은 만큼 살뜰히 관리되고 있다. 너른 잔디밭과 조경수, 벤치까지 올해 지은 새 시설인양 깔끔하다. 산림청과 경상북도, 상주시가 힘을 모아 2011년 완공한 시설로, 과거 옥산초교 인성분교가 있던 자리를 생태교육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백두대간 숲 오감여행 프로그램.

름에 어울리는 ‘생태교육’의 터전이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숲체험 교육으로 정평이 나있다. 유아숲지도사와 숲해설가들이 상주하고 있어,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고교의 체험 수업 대상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교육에 특화된 백두대간 전시관과 강의실, 야외체험장을 갖추었다.

특히 백두대간 숲 오감여행, 숲 밧줄놀이, 도전 골든벨, 나무의사, 임산물 수확 체험 등의 교육 프로그램은 시설을 거쳐 간 많은 학생들을 통해 우수성을 검증 받았다.

대간을 종주하는 등산인들에게는 숙소로 인기 있다. 휴양림과 같은 방식의 콘도식 숙소라 음식을 조리할 수 있으며, 대간 주능선에 있어 효율적이다. 숙박료는 4인 기준 주말 6만 원, 평일 5만 원으로 비교적 저렴하며, 20명 수용 가능한 단체실은 20만 원이다. 예약은 전화(054-536-0914)와 홈페이지(foresteco.or.kr)에서 가능하다. 주소 경북 상주시 공성면 웅산로 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