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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공모전 결과

지난 추석 연휴에 진행했던 '그땐 그랬지' 이밴트 결과입니다.

많은 분들이 추억의 사진들을 공모해 주셨습니다. 사진 한 장 한 장 각자의 추억이 간직된 소중한 사진들이었습니다. 이런 추억에 점수를 매기고 코인을 지급한다는게 참으로 우스운 이야깁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밴트를 계기로 많은 분들이 '추억의 사진첩을 꺼내보며 옛 시절을 회상하는 좋은 시간'이었다며 고마워 하셨습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밴트에 최종 당첨된 사진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문병석(도봉C)💕 / 182301

'추석특집 추억의 사진전' 《그땐 그랬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1971년 봄~~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학교 근처산을 올랐던것 같다~ 그때는 등산이라는 단어도 등산복도 등산화도 모르고 없던시절~ 하얀 체육복 바지와 검은 교복 자림으로...... 아직은 젖내나는 중학교 1학년들의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며~~ 사이다 한병으로 넷이 나눠 마시고 '뽀빠이'라는 라면 부스러기 같이 생긴~ 그 스넥 과자 마저도 귀했던 시절~ 그걸 아끼느라 돌아가면서 한가닥 한올씩만 집어먹던 그 시절이 그래도 좋았다~~ 세월이 반백년 흘러 지금은 한친구 말고는 연락도 안되고 살아 가지만, 그래도 그땐 그랬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꼭 함께 가자고....." 친구들아~! 건강히 잘 살고 있지~~??? 그리웁고 보고 싶구나~~~ (왼쪽에서 세번째가 본인 입니당~^^) (정기석,박금열,문병석,김기운)

소중현(강경) / 187290

1978.03.01. 원주 치악산 눈속에서 길을 잃고 5시간을 헤메다.. 1군사령부 삼일절 기념행사 열병 및 분열 행사를 끝내고 점심을 먹고 12시경에 외출을 나와 보좌관 준위 최○○.. 여자같은 병장 임○○.. 애기 아빠 병장 오○○..함께 입석대로 치악산 비로봉에 올라가기로 하다.. 나는 보좌관과 같이 구룡사 쪽에서 2번 올라간 후라 부대에서 빌빌대느니 시간을 보낸다고 별다른 부담감이 없이 따라 나섰다.. 입석사행 시내버스를 타고 입석대 쪽으로 가파른 산길(지금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 당사에는 구룡사 쪽으로는 밧줄만 2~3군데 설치되어 있었고 입석사 쪽은 밧줄도 없었던 거 같다)을 오르다.. 눈은 녹았으나 아직 추워서 계곡의 얼음은 다 녹지 않았다,, 비로봉에 올라갈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다.. 비로봉 정상에서 보좌관이 갑자기 북쪽능선(지금은 사다리 병창길을 같음)을 따라 구룡사쪽으로 내려가자고 한다.. 비로봉 정상에서 볼 때는 동서남북 어느 쪽에도 눈이 쌓인 것이 보이지 않았다.. 비로봉에서 급경사길 300m 정도 내려 왔을 때까지는 좋았다.. 100m정도 더 내려가니 바람에 몰아쳐진 눈들이 가슴까지 쌓여있다.. 나무들도 눈에 쌓여 끝가지만 남아 있고 산행도우미 리본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비로봉 정상을 바라보니 까마득해 보인다.. 원점회귀로 다시 비로봉으로 올라가자는 말은 서로 하지 않는다.. 현역들이라 눈치만 살피면서 오직 앞으로 전진 뿐이다.. 1km 쯤 내려올 때까지는 그런대로 보좌관이 갖고 온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여유가 있었다.. 보좌관이 선두를 서고 내가 후미를 서서 맘이 여린 애기 아빠와 여자같은 고참을 떠밀어 가면서 내려오다.. 길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내려가면 안됀다고 무조건 계곡 왼쪽으로 뒹굴고 엎드려 미끄럼을 타면서 또 500m 쯤 내려오니 애기 아빠가 춥다고 불을 피워 손을 녹이면서 잠간 쉬었다 가자고 하는데 여자같은 고참이 거든다.. 온 몸이 얼어있다.. 얼지 않은 곳은 사타구니와 팔목뿐이다.. 팔목도 옷소매는 녹은 눈이 달라붙어 다시 얼어있다.. 보좌관과 임무교대를 하여 내가 선두를 뚫고 보좌관이 후미를 맡아 능선의 작은 봉우리를 만날 때 마다 왼쪽으로 돌아 4시간 정도를 눈속에서 헤메다가 계곡의 평평한 길(지금의 세렴폭포 부근)을 만나면서 눈길에서 빠져 나올수 있었다.. 눈길을 빠져나와 뚝방같은 길을 걸을 때는 온 몸이 또 한번 으스스한데 따꼼 따꼼까지 한다.. 얼었던 옷이 녹으면서 눈속에 있었던 불순물들과 미생물들이 피부를 자극했나 보다.. 가까쓰로 6시간 정도를 내려오니 밤8시가 되고 구룡사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한 대 남아 있다.. 관광버스도 두사람이 아직 내려오지 못했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편승을 부탁하여 원주 IC에서 내려 보좌관 숙소로 이동하여 바로 보일러 실에 들려 샤워를 하고 나서야 안도감이 생기다.. 1978.04.30. 전역후 고참 임병장과 오병장은 서울서 한번 만났는데 보좌관은 만날 수 없었다.. 공판타자교정병과 옵셑인쇄병 지금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칼라 카메라가 1974년 일반화되기 시작했는데 1980년대 초까지는 보편화 되지 않았지요..보좌관이 자랑삼아 갖고 다니던거라 기록물 전산화 작업을 하면서 스캐너로 스캔하여 PC에 저장 보관하던 사진을 한장만 흑백사진으로 변환시켰읍니다.. ** 아쉽네요.. 이벤트 참여가 한번만 허용이 되어서.. 1984.07.21. 설악산 권금성을 계곡길로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소공원에 내려와 살펴보니 생후 97일이 된 첫 딸의 얼굴이 새파랗게 되었다가 차디찬 우유를 조금 먹이고 나니 혈색이 되돌아나 살아난 추억도 있는데.. PC 저장분은 사라지고 싸이트온 미니홈피에 저장시켰는데 불통이고 사진은 찾아보면 있는데..

이기창(시몬) / 153277

40년전의 설악산 대청봉(1979, 08, 22) 그땐 그랬지 응모전을 보며 추억의 앨범을 꺼내 봅니다. 시골 촌놈들이 설악산 나들이를 떠납니다.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경월 소주를 기울이며 렌턴의 조명 아래 캠핑장의 젊은이들이 하나가 되어 고고춤을 추며 젊음을 발산 합니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 술에 취한채로 비선대 - 마등령 - 공룡능선 - 봉정암 (1박) 중청 - 대청봉 - 휘운각 - 천불동 - 설악동 이렇게 산행종료 한거 같습니다. BAC 그땐 그랬지 때문에 옛 추억을 소환 시켜줌을 감사드립니다. 1p 1979년 8월 22일 대청봉 모습 2p 대청봉, 흔들바위, ?계곡, 시골 카메라점에 카메라 렌트후에 찰칵 ㅋ 3p 중학교 수학 여행중 고고춤, (친구 군입대 기념 찰칵)등 등

산타봐바라(은숙洪) / 305352

1971년 삼악산 입구.. 군인이셨던 아빠 덕분에 강원도 추억이 많아요... 6살때 쯤 저와 아빠의 등선폭포입구에서 찍은 추억 한장입니다.저는 최근에 다녀왔어요..그때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사진찍기 좋아하신 멋쟁이 울아빠 덕분에 추억 한장 남겼네요..건강하세요♡

산토까이 / 218414

약 35년전 1986년 6월 대학친구들과 함께 무사 제대기념으로 지리산 종주등반에 나섰다. 4명은 제대기념인데ᆢ 입대를 앞두고 있는 친구한명이 따라 붙었다. 제대기념등반답게 군복바지에 군화를 착용하고 2박3일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대원사~화엄사)에 나섰다. 그 시절에는 야영과 취사가 허용되는 시절이라 텐트, 담요 등을 가지고 올라갔으며, 배낭에는 8끼에 대한 식사를 위해 쌀, 김치, 꽁치통조림, 감자, 된장 등 40인분의 식재료와 경유버너, 코펠 등 한살림을 차려 배낭에 나눠지고 갔다. 자가용도 귀했던 시절이라 진주시외버스 터미널 바닥에서 장본 것을 펼쳐놓고 짐을 나누는 모습은 그 당시에는 흔한 풍경이었다. 서로 가장 무거운 쌀을 지겠노라고 아웅다웅하던 기억이 난다. 쌀은 처음엔 무겁지만 갈수록 가벼워지는 걸 등산경험이 좀 있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ᆢㅋㅋ 그래서 텐트는 젤 힘 좋은 놈에게 배당하고 나는 라면과 식재료를 잽싸게 챙겨 넣었던 기억이 난다.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30킬로 정도되는 배낭을 메고 날라다니는 우리들을 보고 참 젊음이 좋다며 칭찬을 했지만 정작 우리는 저 나이때에 지리산 등산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존경스러웠다. 어느듯 내가 그 분들의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사진을 공유하며 옛날 그 자리에서 똑 같이 사진찍자고 제안해 본다. 이번 이벤트로 추억의 사진을 찾아보게 되었고 35년전 멤버들과 지리산 등산을 꿈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