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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굴곡을 넘는 길, 백두대간 백운산 국립공원보다 조용하고, 국립공원만큼 아름다운 철쭉 천국

신록의 대간길에선 우리나라 산이 가진 섬세한 초록의 미학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봉화산 지나서 만나는 944m봉 바위전망대.

BAC는 백두대간 ECO-TRAIL 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이루고 있는 가장 큰 산 줄기인 백두대간은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입니다. BAC는 국내 최고의 산악지인 '월간 산'과 함께 2018년 3월부터 2020년 2월 까지 총 24회에 걸쳐 백두대간을 BAC의 탐방 원칙을 지키며 친환경적으로 탐방하였습니다. 그 기록은 '월간산' 2018년 4월 호부터 2020년 3월 호까지 게제되었습니다. BAC 회원들을 위해 '월간산'의 협조를 얻어 BAC 매거진으로 공유합니다.

가야 할 산줄기보다 지나온 산줄기가 아름다웠다. 폭우를 만나고 어둠을 헤매고 강풍에 밀리고 우박을 맞으면서도 도망치지 않겠다는 마음을 보여 주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40km 넘게 걷자 지나온 산줄기가 내 안 깊숙한 곳에서 말을 걸어왔다. 백두대간을 걷는 것은, 내 안의 굴곡을 넘는 일이었다.

백두대간 우중산행. 사치재에서 복성이재로 이어진 소나무숲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3일에 나눠 41km를 가기로 했다. 발 빠른 이는 이틀에 가는 거리지만, 취재 산행임을 감안하면 3일도 빠듯했다. 블랙야크 고객 참가자는 단 한 명, 평일인데다 거리도 길고, 국립공원 같은 유명산도 아니니 신청자가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점심을 훌쩍 지난 시간 사치재에서 대구 등산인 박춘영·이재호씨를 만났다. 이재호씨는 같은 산악회원으로 박씨를 데려다주러 왔다가 의기투합해 함께 산행하게 되었다. 여기에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박용희 국장이 백두대간 현장답사를 위해 합류했으며, 백패커 민미정씨가 동행했다.

인상을 찡그리는 먹구름과 달리 종주대의 분위기는 밝았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산을 좋아하는 마음이 같음을 확인하자 일종의 안도감과 웃음이 흘렀다. 시작부터 와락 된비알이 덮쳐왔다. 쓰러진 나무까지 협공에 나섰지만 상승기류를 탄 일행을 막을 수 없었다. 야영하기 좋은 헬기장에 서자 시야가 트이며 가야 할 시리봉이 예상보다 큰 덩치로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국적인 숲은 사스레나무의 땅, 흰 예복을 입은 나무들이 5월의 신부처럼 정갈하게 서있다. 임도 가득 잔디가 자리한 새맥이재를 지나자 곧장 시리봉 오름길. 기다렸다는 듯 빗방울이 쏟아지고 가스가 능선에 내려앉는다. 검은 실루엣으로 붐비는 소나무숲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빗방울은 땀을 식혀 주는 시원함에 가까웠다. 연분홍 철쭉은 미인의 눈물처럼 빗방울에 툭툭 떨어졌다. 맑지 않지만 서정적인 길이 ‘왜 이제 왔냐’고, 말을 걸어왔다.

781m봉을 지나자 매혹적인 진분홍 철쭉숲이 구름 속에서 불쑥 안겨온다. 땀과 빗물이 섞인 얼굴을 핑크빛 손길이 어루만진다. 꽃잎을 볼에 붙이고서야 지날 수 있는 풍성한 철쭉화원을 지나자, 문득 나타난 성벽. 아직 지킬 것이 남았다는 듯 촘촘한 방어선을 지키고 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지킨 아막산성이 1,000년 세월을 훌쩍 건너와 옛 사병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토해내고 싶은 걸, 이젠 다 끝났다며 꾹 참고 있다.

안개 속에서 성을 따라 직진했더니 뒤에서 일행이 부르는 소리가 난다. 이 길이 아니다. 아막산성의 사연을 몸은 따라가고 싶었나보다. 어둠이 내리고서야 복성이재에 닿아 축축한 몸을 뉘일 숙소로 이동한다.

다음날 시작은 맑았다. 순도 높은 파란 물감을 하늘에 풀어 놓은 쾌청한 날씨가 그렇게 뒤바뀔 줄은 몰랐다. 남원과 장수 경계인 복성이재의 아침, 변도탄의 흔적을 찾아보지만 지금은 평범한 도로가 지나는 고개일 뿐. 임진왜란 때 변도탄이란 기인이 있었는데, 그는 나라의 군량미를 관리하는 양관이었다. 천문지리에 밝았던 그는 3년 내에 국가에 큰 전란이 있을 것이라며,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상소했으나 백성을 속이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다 하여 삭탈관직 당하였다. 홀로 전란에 대비하고자 북두칠성 중 가장 밝은 복성 별빛이 머문 곳에 터를 잡고 움막을 지었는데, 이곳이 오늘날의 복성이재다.

달달한 분홍 산철쭉이 지천으로 널린 봉화산 구간. 여느 철쭉 명산들에 비해 사람이 없어 철쭉의 바다를 독차지 할 수 있었다.

분홍색 용의 출현! 감미로운 봉화산

소나무숲을 따라, 사유지 경계의 철망을 따라 올라서자 매봉 꼭대기다. 어제와는 다른 세상이라는 듯 분홍 물결이 굽이친다. 철쭉 축제가 열릴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하는 봉화산의 시작이다. 철쭉 터널을 지나 봉화대가 있었다는 정상에 서자 일필휘지의 솜씨로 써 내린 장쾌한 풍경이 펼쳐진다. 함양장수남원 일대가 한 방에 드러나고 분홍색 용이 능선을 따라 아리따운 향기를 뿜으며 꿈틀거린다. 자연 군락지답게 사람 키보다 큰 정통 산철쭉터널 속을 걷는 맛이 제법 운치 있다. 대간 종주만 아니라면 향락객마냥 돗자리 펴고 핑크빛 낙원에서 시시덕거리며 한나절 머물고 싶다.

큼지막한 표지석이 있는 봉화산 정상. 오른쪽 뒤로 살포시 분홍 능선이 드러난다.

철쭉동산을 지나도 산철쭉은 꾸준히 따라붙는다. 잊을 만하면 분홍색 축포를 펑펑 터뜨리며 대간꾼들을 응원한다. 분홍만 있으면 재미없지 않냐며 병꽃나무가 노란 팡파르까지 불어 댄다. 흰 조팝나무꽃도 손을 흔들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큰 기대 없이 온 산행인데 달콤한 풍경의 연속이다.

870m봉엔 대간의 기운을 받고 싶었는지 누군가의 무덤 흔적이 있다. 무덤 잔디밭에서 아늑하게 풍경을 즐기고 싶지만, 바람이 심상찮다. 강풍을 버티지 못하고 최근에 쓰러진 나무들이 간간이 길을 막는다. 흰수염고래마냥 듬직하고 부드러운 바위절벽이 944m봉이다. 경상도 쪽으로 경치가 확 트였다. 밝은 초록빛 신록이 돋아나는 지릉의 흘러내림은 철쭉 못지않게 비경이다. 구름이 뭔가 더 감동을 주려는지 드라마틱한 모양을 그려내며 그 사이로 햇살이 쏟아진다.

광대치를 지나 월경산에 올라서자 구름이 짙어져 초저녁처럼 어둔 하늘이 되더니, “우르릉 쾅”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쏟아져 내린다. 비 예보는 없었는데, 지난달에도 그랬고 이번 대간종주는 우중산행이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강풍까지 합세해 옆에서 비가 때려대니 전망바위에라도 올라설라치면 무척 조심스럽다.

진짜 악천후가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는 듯 이젠 우박이 인정사정없이 쏟아진다. 숲이 짙은 곳에서 음식을 먹으며 재정비한다. 이번 여정의 최고봉인 백운산(1,278.6m)을 넘어야 한다. 진짜 산행은 지금부터다.

잣나무, 잎갈나무, 노각나무, 굴참나무, 물박달이 푹신한 오솔길을 내어주는 중재를 넘고 비슷한 이름의 중고개재를 지나자 휴식 같은 힐링산행도 끝이다. 끝판대장격의 가혹한 오르막이 꼴딱꼴딱 숨넘어가는 효과음을 넣으며 종주대의 체력을 시험한다. 비바람까지 합세해 어렵다싶은데, 다들 베테랑 등산인답게 힘으로 난공불락의 오르막을 돌파한다.

백운산 정상에 닿자 축하한다는 듯 햇살이 쏟아진다. 모처럼 너른 정상에서 경치를 즐기며 땀과 빗물로 범벅이 된 매무새를 바로잡는다.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영취산을 향해 갈수록 연한 철쭉이 하이파이브 하자며 꽃봉우리를 들이밀고 있다. 미안하지만 향기로운 꽃길을 온 몸으로 맞으며 걷는다.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꽃잎, 즈려밟는 꽃잎들의 핑크빛 비명을 뒤로하고 떨어지는 해를 놓치지 않으려 근육에 가속력을 붙인다. 영취산 꼭대기에 닿자, 어둑하여 경치를 즐길 여유도 없이 무령고개로 하산한다. 하루 동안 봄여름가을겨울 날씨를 다 맞닥뜨린 탓에 녹초가 된 일행들이 숙소로 돌아간다.

민령으로 내려서는 길, 트인 경치가 펼쳐진 바위를 만났으나 강풍으로 인해 중심을 제대로 잡기가 어렵다. 논개생가가 있는 오동저수지가 발아래다.

비밀스런 철쭉 화원, 민령

선수 교체다. 이재호씨와 박용희 국장이 일정상 돌아가고 백패커 이재승씨가 합류했다. 최적의 날씨, 미세먼지 한 점 없는 완벽한 하늘이 일정 마지막날 무대를 만들어 놓았다. 육십령까지 비교적 내리막이 많은 산길을 달리는 일만 남았으나, 무령고개에서 영취산 올라가는 짧은 된비알에 땀을 쫙 뺀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풍경, 떡갈나무 신록이 아기 손바닥처럼 귀엽게 돋았다. 온 산을 가득 메운 떡갈·신갈 신록,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며 산에 있다는 것이 안도감이 든다.

쌍봉이 솟은 덕운봉에 닿자 용틀임하는 소나무와 열린 경치가 조화롭다. 북으로 남덕유가 병풍을 그리고 남으로 지나온 백운산이 거대한 성채를 쌓아 놓았다. 저토록 큰 산을 넘어 왔다는 성취감이 총총거리며 따라온다. 가야 할 산줄기보다 지나온 산줄기가 아름다움을 몸으로 실감한다.

오늘 극복해야 할 과제는 바람, 발로 딱 버티지 않으면 몸이 밀릴 정도로 막강한 봄바람이 산을 삼킬 듯 몰아친다. 전망바위에 올라서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부실한 가지들은 떨어지고, 튼튼한 것들만 살아남는 숲의 대순환이 눈앞에서 벌어진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조릿대를 지나 민령에 닿자 다시 천상화원이다. 이름 없는 산이라 생각했던 구간에서 마주친 비밀스런 철쭉 화원에 놀라, 배낭을 내려놓고 한동안 꽃에 둘러싸여 쉰다. 은방울꽃으로 빼곡한 산길을 올라서자 마지막 과제인 구시봉이다. 산꼭대기에 국기봉이 세 개나 있어 깃대봉이라고도 불리며, 산세가 ‘구시’를 닮았다 하여 이름이 유래한다. 구시는 가축에게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인 구유의 사투리다.

정상 아래에 참샘이 있다. 풍부한 수량의 물맛 좋은 샘터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 표지기 ‘준·희’로 유명한 부산 최남준(76)씨가 만들었다. 대간·정맥·기맥·지맥을 완주했으며 전국 능선의 적재적소에 있는 샘을 샘터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자신의 이름에서 ‘준’자를 따고 고인이 된 아내의 이름에서 ‘희’자를 따서 ‘준·희’라는 표지기를 만들어, 길찾기 어려운 곳에 매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생전에 아내와 함께했던 산행을 추억하기 위해 만든 표지기가 대간과 정맥에서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육십령으로 내려가는 길, 동쪽으로 명산이 줄지어 섰다. 황석산, 기백산, 금원산, 거망산, 월봉산까지 100명산에 속한 영웅호걸들이 비범한 산세로 뻗어 있다. 기맥에 불과한 저 산줄기가 오히려 대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기운 넘친다.

1.5km만 가면 육십령인데, 통증이 온다. 진부령까지 일시종주도 할 수 있을 것 같던 자신감은 어디로 가고, 산 앞에 한없이 작은 나를 마주한다. 내가 산을 읽는 줄 알았는데, 산이 나를 읽고 있었다.

5~8구간 생태정보

백두대간 주인공은 나야 나! 신갈나무!

백두대간 주인장은 신갈나무다. 사람은 잠깐 스쳐 지나는 존재일 뿐 백두대간 주능선을 365일 24시간 지키는 건 신갈이다. 2016년 백두대간 생태조사에서 가장 많이 서식하는 나무는 신갈나무로 밝혀졌다.

이번 구간 역시 대세는 참나무과의 신갈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참나무는 신갈을 비롯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가 있다. 흔히 참나무 6형제라 부른다. 참나무 형제들은 전국적으로 분포도가 넓으며 개체수도 많다.

참나무 열매를 도토리, 꿀밤 등으로 불러왔으며, 상수리나무는 열매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리는 묵을 만들었다’해서 이름이 유래한다. 목재의 재질이 단단해 건축이나 가구를 만드는 데 사용했으며, 불 피우는 데 장작으로도 화력이 좋고 오래 타는 가성비 좋은 나무이다. 여러모로 효용성이 많은 ‘참眞’ 나무라 해서 ‘참나무’란 이름이 유래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행 경험이 많은 나무 전문가나 숲해설사가 아니고선 참나무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잎과 수피, 열매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잡종화가 잘 일어나는 대표적인 나무라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가 만나 정릉참나무를 만들었고, 신갈나무와 졸참나무가 만나 물참나무를 만들고, 갈참나무와 신갈나무가 만나 봉동참나무를 나게 했다. 이번 대간길에선 신갈 외에도 떡갈나무와 굴참나무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신갈이 대간을 장악한 건, 추위에 강하고 번식 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참나무는 음수 혹은 중성수(반음수)로 분류되는데, 이것은 인내력이 강함을 뜻한다. 키 큰 나무들이 햇볕을 가려 그늘 아래에 있다 하더라도 꿋꿋이 견디며 햇볕을 듬뿍 받을 날을 기다리며 자란다. 음수라고 해서 음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늘져도 참고 자란다는 뜻이다. 반면 소나무는 극양수에 가까워 햇볕이 없으면 이내 고사한다. 때문에 고산에서 소나무의 자리를 신갈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능선의 가혹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신갈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나무로 자리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대표나무가 소나무인 시절은 수치상으로만 보면 이미 끝난 셈이다.

백두대간 함양·남원·장구 구간에는 이밖에도 사스레나무, 고추나무, 철쭉, 털진달래, 밤나무, 소나무, 병꽃나무, 물푸레나무, 잣나무, 초피나무, 서어나무, 미역줄나무, 일본잎갈나무, 할리아나꽃사과(서부 해당), 조팝나무, 조릿대, 회잎나무 등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봄꽃은 선씀바귀, 할아비꽃대, 뱀딸기, 제비꽃, 풀솜대, 쇠뜨기, 은방울꽃, 할미꽃 등이 대간 능선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아쉽게도 이 지역의 희귀식물인 할미밀망, 모데미풀, 자주솜대, 세뿔투구꽃은 보지 못했다.

이 많은 식물 중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단연 철쭉. 특히 남원 봉화산은 철쭉제가 열릴 만큼 정상 일대가 산철쭉 화원이었다. 육십령을 향해 북진할수록 분홍빛이 옅은 철쭉이 많았다. 산철쭉과 철쭉, 간간이 뒷북치는 털진달래까지 섞여 예상치 못한 분홍 능선의 습격에 산행 내내 마음이 설렜다

5~8구간 역사·지리·지명유래

계곡을 길러내고, 강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산이 어디인지 단순명료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이 백두대간의 진실이다. 땅 속 광물의 흐름의 연속이라 산이 없는 곳도 ‘산맥’이라 이름 붙인 고토 분지로의 지질 체계가 아닌, 산자분수령의 단순명쾌한 진실이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아막산성. 10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원래 틀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낙동강, 금강, 섬진강을 나누는 단 하나의 꼭지점!

낙동강, 금강, 섬진강을 나누는 산이 있다. 바로 장수 영취산(1,075.6m)이다. 영취산을 꼭지점으로 북서로 흘러내린 계곡은 모두 금강으로 흘러가고, 남서로 흘러내린 계곡은 모두 섬진강이 되고, 동으로 흘러내린 계곡은 남강이 되어 낙동강에 합류한다. 백두대간의 무수한 산 중에서도 충청, 전라, 경상도의 젖줄을 가르는 중요한 산이다. 의미를 좀더 부여하면 우리 민족의 수천 년 농경 사회를 지탱해 온 생명 젖줄의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조선의 지리 개념이자 산 족보였던 산경표만 보더라도 계곡을 길러내고, 강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산이 어디인지 단순명료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이 백두대간의 진실이다. 땅 속 광물의 흐름의 연속이라 산이 없는 곳도 ‘산맥’이라 이름 붙인 고토 분지로의 지질 체계가 아닌,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단순명쾌한 진실이다.

영취산이란 이름은 불교 화엄경에서 유래한다.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에 있던 산 이름이 영취산이었다. 한자 표기는 영축산靈鷲山과 취서산鷲栖山 두 가지이지만, 한글 표기는 영축산·영취산·축서산·취서산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것은 한자 ‘鷲취 또는 축’ 자에 대한 한글 표기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일반 옥편에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한다.

이번 대간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역사적인 흔적은 아막성阿莫城이다. 사치재에서 북진하다 781m봉으로 지나 복성이재로 이어진 대간길에 있다. 아막성을 처음 마주친 이는 역사에 문외한이라 해도 놀라게 된다. 보통 오래된 산성은 너덜처럼 바위더미만 남아 있는 곳이 많은데 1,000년이 넘은 산성임에도 불구하고 높이 2m 이상의 성벽이 견고하게 남아 있다.

남원과 함양의 경계이며 해발 680m 지점에 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 된 요충지로 602년(신라 진평왕 24)에 백제가 아막성을 침공하자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을 보내어 백제군을 물리쳤으나 두 사람은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막阿莫, 阿谷의 뜻은 주성主城·주곡主谷의 의미로, 섬진강의 계곡분지인 이 지역 특색과 중요한 방어진지라는 데에서 나왔다.

바쁘게 걷는 중에도 옛 도기 파편이 흔하게 눈에 띌 정도이니, 오랫동안 사람이 지켰던 중요했던 성임을 알 수 있다. 실제 성안에서 삼국시대의 기와조각과 백제의 도자기들이 발견되었다. 성터는 둘레가 633m에 이르며 동·서·북문 터가 남아 있다.

남원과 함양의 말투가 다르고 문화· 기후가 다른 것은 단순히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 차이가 아닌, 백두대간 때문이다. 이미 1,000년 전부터 백두대간이라는 큰 산줄기가 국경과 문화·기후를 가르며, 사람들의 삶에 뿌리 깊게 영향을 미쳐온 것이다.

봉화산으로 올라서는 길목에 복성이재가 있다. 이곳 일대의 남원 아영면과 인월면, 산내면은 흥부의 고향으로 불린다. 흥부의 성씨는 연(제비)씨 혹은 박씨로 알려졌으나 지난해 공개된 <흥보만보록(1833년)>을 보면 흥부가 무과에 급제해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쓰여 있다. 덕수 장씨의 시조는 고려 말 귀화한 위구르족 출신 장순룡이니, 흥부의 실제 모델이 장순룡이라는 얘기가 된다. 역사적인 사실이라기보다, 그럴 수도 있다는 안주거리 이야기다.

육십령 기슭 장수군 장계면에는 논개 생가가 있다. 논개는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6만 명의 관민이 모두 전사하고 성이 함락되자 촉석루에서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논개에 대한 공식적인 첫 기록은 유몽인(1559~1623년)의 <어우야담>이며 이후 끊임없이 논개에 대한 논공 문제가 거론되었다.

실제 진주에 논개 사당이 지어진 것은 영조 16년(1740년)이니, 사후 150년이 지나서야 그 공을 제대로 인정받게 된 셈이다. 그녀를 영웅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조선 사회가 가진 신분의 한계는 100년이 넘도록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사당이 세워지고 봄가을제사를 올렸으나 그 전부터 진주에서는 논개가 죽은 6월이면 ‘의암별제’라는 축제를 벌였었다.

본래 논개 생가는 오동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몰되어 그 물가 언덕에 복원되었다. 논개 동상과 기념관 등이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다.

육십령은 대간 종주의 중요 기점이다. 대부분의 구간 종주자들이 이곳을 기점으로 산행을 끝내거나 시작한다. 육십령은 무척 오래된 지명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적부터 요해지였으니 행인이 이곳에 이르면 늘 약탈당하므로 반드시 60명이 모여야만 지나가곤 했는데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고 쓰여 있다.

이번 대간길에서 가장 높은 우두머리 산은 백운산白雲山(1,278.6m)이다. 한자는 달라도 ‘백운’이란 이름을 쓰는 산은 전국에 60개가 넘는다. 정상 표지석 뒤에는 항상 정상에 흰 구름이 걸려 있어 이름이 유래하며, 낙동강과 섬진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라 적혀 있다.

백운산이란 이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이 담긴 이름이다. 일제치하 최남선은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된 한국사를 불함문화론으로 바로잡고자 했다. ‘불함’이란 ‘’이며, 이것은 하늘, 태양, 신神을 뜻한다. 단군사상인 천신숭배사상()이 우리 고유의 사상으로 이것이 고대 중국과 일본으로 뻗어나갔다고 주장했다.

‘’ 사상의 한자어가 바로 ‘백白’이다. ‘백’ 계열의 가장 신성한 산이 백두산이며, 환웅이 홍익인간의 뜻을 품고 3,000명의 무리를 데리고 내려온 곳이 태백산이라 했다. ‘백운’은 천계를 뜻하는 ‘신의 산’, ‘신령스런 산’을 뜻한다. 예부터 이어온 산악숭배사상이 깃들어 있다. 우리나라에 산이 얼마나 많은지 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치재~육십령 구간 종주 가이드 tip

순수 대간길만 41km, 장거리인 만큼 구간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두 번에 나눠서 종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백운산과 봉화산 사이의 중재(중치)가 거리상 중간 지점이며, 접근과 탈출도 비교적 수월하다. 대간 줄기에서 도로가 지나는 곳은 복성이재가 유일하며, 영취산은 도로가 지나는 무령고개에서 600m 거리로 가까워 구간을 나누는 기점으로 많이 이용된다. 전체적으로 길찾기는 쉽지만 아막산성에서 복성재로 내려설 때 주의해야 한다. 성을 따라난 좋은 길로 가지 말고 표지기가 여럿 붙은 왼쪽 길로 꺾어 내려가야 한다. 장수군 번암면의 방화동자연휴양림이 인근에서 가장 큰 숙소다

교통

남원역에서 사치마을로 가는 버스가 하루 3회(7:00, 12:20, 18:05) 운행. 복성이재에서 800m 거리에 성암버스정류장이 있다. 남원역에서 800m 떨어진 남원여객자동차 정류소에서 하루 3회(6:20, 10:10, 14:25) 운행. 무령고개와 육십령은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 장계콜택시(063-353-0005, 353-1588), 서상콜택시(055-963-0258, 963-0141).

인증정보

5구간 : 고남산~유치재~사치재~매봉

5구간은 사치재와 매봉이 인증지점이다. 사치재가 축구장만큼 넓은 터인데 반해 인증장소는 낡은 ‘사치재’ 팻말이 있는 이정표이므로 놓치고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등산로 입구에 있다. 매봉은 복성이재를 올라서면 만나는 첫 번째 봉우리로 아담한 표지석과 시원한 경치가 기다린다.

사치재 표지목(500m) 위치 35.479056, 127.561121 / 매봉 정상석(712m) 위치: 35.524913, 127.56843

6구간 : 매봉~봉화산~광대치~중재

봉화산 정상석(920m) 위치 35.547233, 127.578732 / 광대치 표지목(820m) 위치 35.578342, 127.602963 /중재(중치) 표지목(650m) 위치 35.598352, 127.610272

7구간 : 중재~백운산~영취산

7구간의 인증지점은 백운산과 영취산 정상인데, 모두 큼직한 표지석이 있어 인증사진을 찍기에 최적이다.

백운산 정상석(1278m) 위치 35.61856, 127.63529 / 영취산 정상석(1075m) 위치 35.642742, 127.620021

8구간∣영취산~민령~구시봉~육십령

8구간의 인증지점은 민령, 구시봉, 육십령인데 주의를 요한다. 민령은 철쭉으로 둘러싸인 안부인데, 백운산 방향과 깃대봉 방향, 임도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인증장소다. 신경 쓰고 있지 않으면 스쳐 지나기 쉬운 지점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육십령은 터널을 가운데 두고 서쪽의 장수 방면과 동쪽의 함양 방면으로 나뉜다. 인증지점은 함양 방면의 ‘백두대간 육십령’ 표지석이다. 장수 방면에도 육십령 표지석이 있으므로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장수 방면 표지석은 2~3m 높이이며 화단 속에 있는 반면, 함양 방면 표지석은 5~6m 높이로 크고 길가에 있어 눈에 잘 띈다. 아무리 갈 길이 멀어도 인증지점을 찾아 제대로 인증사진을 남기자.

민령 표지목(840m) 위치 35.68814, 127.641403 / 구시봉(깃대봉) 정상석(1014m) 위치 35.701467, 127.649694 / 육십령 표지석(734m) 위치 35.718626, 127.6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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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인터뷰

“명산 100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바뀌었어요”

박춘영 대구경북 블랙야크 팔공산악회

블랙야크 명산 100 도전 프로그램을 통해 등산에 입문했다. 여동생을 따라 시작했는데, 첫 산행이었던 치악산에서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칠’ 정도로 고생했으나 이때의 강렬한 기억이 오히려 등산에 깊이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블랙야크 명산 100 산행을 하면서 기쁜 날도 많았고, 힘든 날도 많았으나 이를 통해 등산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도전하기 전까지는 심신이 지친 상태였으나 100개의 명산을 다 올랐을 땐 자신감 넘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2년 전 100명산을 마친 후 100명산 다시타기와 백두대간 같은 새로운 블랙야크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블랙야크 셰르파 신청을 했으며, 역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자연보호도 하고 좌수 올리는 재미가 있지요”

이재호 대구경북 블랙야크 팔공산악회

산행 대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열혈 등산 마니아다. 대구 토박이인 그는 2006년 대구등산아카데미를 수료하며 산에 입문했다. 지방 출장을 가서도 그 지방의 산을 타는 습관이 있어 일주일에 3일 산행은 기본이다. 안내산악회 등 숱한 산악회를 거쳤으나 먹고 노는 분위기의 산악회에 염증을 느껴, 산행 중심의 산악회를 찾다가 지금의 ‘대구경북 블랙야크 팔공산악회’를 만나고부터 목표를 두고 오르는 도전 산행에 집중하고 있다.

골수 블랙야크 알파인클럽 예찬론자인 그는 “도전 프로그램을 통해 그냥 산을 타는 것이 아니라 그 산에 대한 공부도 하게 되고, 다른 도전자에게 도움도 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가장 핵심은 “좌수 올리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하늘의 별을 빗대어 100명산을 ‘좌’로 표현한다. 또 “블랙야크 클린산행을 통해 자연보호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도 큰 보람”이라 설명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야크 장비로 풀장착한 그는 “도전 산행을 할 때는 블랙야크를 입어 주는 것이 예의”라고 말한다.

"출입금지 구간, 예약제로 개선토록 노력할 것”

박용희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국장

경희대산악부 81학번인 그는 미국 노스웨스트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사무직으로 20년간 일하다 2006년 명퇴 후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기도 했으나 한국 사람이 그리워 2011년 귀국해 다시 산을 찾았다.

클라이밍을 통해 건강한 몸으로 거듭난 그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학산악연맹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 기간 동안 서울 서초동에 연맹의 실내암장을 오픈해 재정자립과 재학생 교육에 힘쓰는 등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공헌을 했다. 기획력과 추진력을 인정받은 그는 지난해 5월 등산트레킹지원센터 국장으로 발탁되어 등산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인 5대 트레일과 5대 명산둘레길을 국가숲길로 지정해, 더 편히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백두대간 개방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출입금지 구간을 국립공원과 협의를 통해 예약제로 개선하겠다는 것. 대간 완주자가 범법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박용희 국장 특유의 세심함으로 풀어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