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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간 '산친구' 마운틴 에세이

사진 : 어느 주말 선인봉을 오르는 산악인들

글 : 한상섭

오랫만에 집을 나서 등산화 끈을 묶고 도봉산으로 향했습니다.

항상 혼자 가는 길이지만 오늘은 애인이자 아이들 엄마이자 집사람인 그녀와 함께 하는 길입니다. 오늘의 산행 목적지는 8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산 친구가 있는 곳입니다. 선인봉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그를 묻었습니다. 묻었다기 보다는 장례를 치른 후 유족에게 양해를 구해 유골 일부를 덜어서 선인봉이 잘보이는 산기슭 나무아래에 뿌린 것이죠.

도봉산 초입부터 보이는 선인봉. 선인봉은 북한산의 인수봉과 더불어 수도권을 대표하는 암벽이다. 수도권의 산악인들은 대부분 인수봉과 선인봉에서 암벽에 임문하고 실력을 쌓는다. 그리고 그들은 히말라야를 향한다. 산악인들에게 이 선인봉은 수 많은 추억과 인연을 떠올리는 매개체이다.

도봉산장부터 산길을 알려주고 삼신암터에 들러서 옛이야기 들려주고 주변 구경을 시켜주고 능선길에 올라섭니다.

멀리 경치가 조망되는 너럭바위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쉬던 제 애인이 뒤 편 바위 앞에서 절을 하는 저를 의아하게 바라봅니다. 당시 그 친구를 여기에 묻고 집에 와서 적었던 글입니다. 애인에게는 이야기로 들려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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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듯 산 친구를 보내고 돌아와 정신적 긴장이 풀어질 때면 마치 멀고 긴 여행에서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예전 촐라체에서 하늘로 간 (김)형일을 보낼 때 그랬고,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민)준영을 보낼 때도 그랬습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향해 가는 길목. 촐라체는 어떤 봉우리보다 가까이에 우뚝 솟아 있다. 높이는 6440미터에 불과해 히말라야의 8천 미터급 봉우리에 미치지 못하지만, 등반 난이도에서는 그에 못지 않다. 산악인 김형일은 2011년 촐라체 북벽을 오르다 사고를 당해 고인이 되었다.

정신적 긴장의 상태를 '텐션(tension)이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클라이머들이 등반 중 추락할 때나, 추락하기 전에 확보보는 동료에게 외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줄(자일)을 느슨하게 하지 말고, 팽팽하게 당기라는 의미이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슬프고 허망하고 황당한 정도가 큰 것은 불현듯 찾아오는 불확실성에 있는 것이고, 생물학적 나이가 젊거나 어리기 때문에 강도가 센 것 아닐까요.

나이가 많아 찾아드는 노환이거나, 나이가 깊어짐에 따른 자연사(自然死)일 경우에는 '호상(好喪)' 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합니다. 모든 개별적인 죽음이 다 슬프고 사연이 있을진데 어찌 좋다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요.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말이라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공감하고 싶지 않은 단어이기도 합니다.

탈레이 사가르는 인도 가르왈 히말지역에 있는 6904미터의 산이다. 이 산은 경사가 심해 등반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1998년 탈레이 사가르 북벽을 통해 정상으로 오르던 신상만, 최승철, 김형진 세 명의 산악인은 정상을 눈앞에 두고 의문의 추락을 했다. 당시 우리 나라의 산악계의 최고의 실력자였던 그들은 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사진 : 변성호 제공)

​갑자기 닥쳐 온 산친구의 장례식장 첫 날...

남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는, 아니 믿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집사람이 울며 통곡하더군요. 누구 아저씨도 왔고, 누구 형도 왔는데, 왜 우리 그 이만 없느냐며 ...

​발인제가 끝나고 운구를 할 때도, 영구가 화로에 들어갈 때도 그 녀의 통곡은 깊었습니다. 모든 유족이 그렇듯 고인의 유골을 수습할 때가 가장 슬픔이 깊어집니다. 거기서 그 녀가 또 한 번 오열하며 통곡하며 말합니다. 다 들 미워할 거라고, 전부 미워할 거라며 우리들 산사람들을 보며 울며 말합니다.

그의 유골함을 받아 들고 걸어갈 때는

"이게 뭐냐, 겨우 이것 뿐이냐, 다 용서할 수 없어, 다 미워할거야..." 라고 깊게 오열했습니다. 산 다니는 죄, 등반을 하는 죄 실로 큽니다. 그의 집사람의 외침에 우리는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인과 함께 산을 다녔던 일행 모두 산에 올라 고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상을 차리고 제례를 올리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녀도 많이 안정을 찾은 모습이더군요. 많은 산사람들에게 그녀가 마지막 인사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눈물을 조용히 흘리더군요. 그 눈물을 보며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 속에서 스쳐가는 많은 영상들을 보았습니다. 많은 산친구들을 보내며 죽음이라는 것, 이별이라는 것에 이제 웬만큼은 친숙해졌고 무디어졌다 생각했는데 개별적인 죽음 앞에서는 항상 개별적 슬픔이 앞서, 슬프고 눈물 짓게 합니다.

​다시 도봉산장으로 내려와 커피를 마십니다. 날이 따뜻해 마당에서 마셔도 너무 좋습니다. 산장의 어머니는 항상 그 모습인 듯 하네요.

​친구를 만나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문을 연 천만불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또 다른 산친구와 유쾌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헤어져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고 김형일 대장이 탈레이 사가르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그의 동생인 김형섭은 탈레이 사가르에서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김형일 대장 역시 촐라체를 오르다 고인이 되었다. (사진 : 변성호 제공)

한상섭

CJ제일제당 산악회 등반대장 회장 역임

정승권등산학교 한국등산학교 암벽반 빙벽반 수료

익스트림라이더 빅월 등산학교 수료

유럽 알프스 몽블랑, 마터호른 북벽 등정

설악산 대승폭, 소승폭, 토왕폭 등반

월간 마운틴 주최 산악문학상 수상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스포츠클라이밍 1급지도사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칼럼니스트

블랙야크 셰르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