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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성스러움과 어우러진 들쭉 맛” 민병준 칼럼 02

글·사진 / 민병준_《해설대동여지도》, 《백두대간 가는 길》 저자

한반도 산들의 으뜸,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이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서 내려와 신시(神市)를 세운 산이면서 한반도 모든 산의 근원, 즉 산지조종(山之祖宗)이다. ‘마루 종(宗)’의 마루는 ‘높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다. 그렇다면 몇 미터일까. 현재 한국에서 제작된 지도엔 대부분 2,744m로 표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지도에도 같은 높이다. 북한이 1990년대 자체 측량한 높이는 2,750m이다. 중국은 2,749m로 표기하고 있다.

이렇게 높이가 다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각각 기준으로 삼은 평균해수면 기준이 달라서다. 한국은 인천 앞바다, 북한은 원산 앞바다, 중국은 청도 앞바다가 기준이다. 또 백두산이 매년 3mm씩 융기하기 때문이라는 학설로 설명하기도 한다.

대동여지도 백두산 부근. 산의 생김새를 신령스럽게 표현했고, 천지를 대지(大池)라 표기했다.

백두산의 이름을 살펴보자. 문헌에 나오는 첫 명칭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라고 하는 《산해경(山海經)》의 불함산(不咸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에 개마산(蓋馬山)·태백산(太伯山), 《삼국사기》에 태백산, 《고려사》에 백두산이라는 명칭이 보인다. 장백산(長白山), 백산(白山)이라고도 했다. 순우리말로는 모두 ‘밝달’, ‘한밝달’인데, 크게 밝다는 의미다.

최고봉 병사봉의 지명 유래

최고봉 명칭도 여럿이다. 조선시대엔 병사봉(兵使峰)이라 불렀다. 북한에선 장군봉(將軍峰)이라 한다. 우리도 이 명칭을 따른다. 1963년 백두산을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이 최고봉 명칭이 병사봉이란 이야기를 듣곤 장군봉으로 바꿨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병사봉의 병사는 군대에서 일반 사병을 뜻하는 병사(兵士)가 아니다. 조선시대 함경도 지역 사령관인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줄임말인 병사(兵使)에서 온 명칭이다. 조선 영조 때 윤광신이라는 인물이 병마절도사 시절, 백두산 정상에 올라 창을 들고 춤을 추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일제강점기엔 명칭 조작도 있었다.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지도엔 백두산 최고봉을 대정(大正)이라 표기했다. 대정은 일본 다이쇼시대(大正時代)의 연호다. 한반도 최고봉이요, 한민족의 정신인 백두산 최고봉의 명칭을 대정봉이라 훼손함으로써 우리 겨레의 기운을 억누르려는 폭력이었다. 나라 빼앗긴 설움이다.

일제강점기 지도의 백두산 부근. 최고봉에 일본 연호인 대정을 붙이는 폭력을 가했다.

홍익인간의 서막을 펼친 성지

2,750m. 백두산이 우리 민족의 영산인 까닭은 단지 높아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을 알리는 산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왕, 환인. 환인의 둘째 아들 환웅이 신시(神市)를 바로 여기에 세웠다. 즉 백두산은 환웅의 아들인 단군의 탄강지(誕降地)로서 우리 배달겨레가 홍익인간의 서막을 펼친 성지다.

육당 최남선은 《백두산 근참기(覲參記)》에서 “홍익인간의 희막(戱幕)을 개시”, “단군의 탄강지(誕降地)요 조선국의 출발점”이라며 이렇게 찬탄했다.

“이마를 스치는 것은 백두산 바람이요, 목을 축이는 것은 백두산 샘물이며, 갈고 심고 거두고 다듬는 것은 백두산 흙이다. 이렇게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고, 떼려 해도 떼 낼 수 없는 것이 백두산과 우리의 관계다.”

지도는 제작 당시의 시대를 표현한다. 그 시대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겨레는 대대로 백두산을 신령스럽게 여겼다.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할 때 백두산을 신비스럽게 표현했다. 흰 눈썹이 돋보인다. 『택리지』에도 나온다.

“백두산은 여진과 조선의 경계에 있는데, 일국의 눈썹처럼 되어 있다. 산 정상엔 큰 못이 있는데, 둘레가 80리다. 서쪽으로 흘러서 압록강이 되고, 동쪽으로 흘러서 두만강이 되며, 북쪽으로 흘러서 혼동강(混同江)이 되는데, 압록강 안쪽이 바로 우리나라다.”

산 정상의 ‘큰 못’은 백두산의 상징인 천지(天池)다. 대택(大澤), 태일택(太一澤), 용왕담(龍王潭)이라는 이름도 있다. 대동여지도엔 대지(大池)라 표기했다. 영어로는 THE DRAGON PRINCE’S POOL이다.

우리는 ‘하늘 못’인 천지에서 신령스러운 향기를 맡는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 자료들을 보면 천지라는 지명을 중국에서 처음 붙인 것이라 한다. 1908년 청나라 관리 유건봉(劉建封)이 《장백산강강지략(長白山江崗志略)》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언론도 이를 받아 적고 있다. 아니다. 조선시대 기록, 즉 1751년(영조 27년) 갑산부사 이의철(李宜哲)의 <백두산기(白頭山記)>, 조선 후기 실학자 성해응(成海應)의 <유백두산기(遊白頭山記)>에 ‘천지’라는 명칭이 분명히 나온다.

환웅이 神市를 세운 천리천평

구글어스 백두산 부근. 최고봉인 장군봉은 북한 영역에 있다. 필자가 봉우리 명칭을 표기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진 백두대간의 첫 고개인 허항령을 넘으면 삼지연이다. 그 너머엔 백두산을 배경으로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활한 벌판이 펼쳐진다. 백두산을 찾는 이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천평(天坪)이다. 흔히 ‘하늘처럼 높은 곳에 있는 광활한 땅’이라 해서 천리천평(千里天坪)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이 바로 신시(神市)다.

천평이란 좁게는 신무성, 포태산, 증산을 잇는 고원 지대이고, 넓게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간도 땅 일대를 모두 포함한다. 최남선은 《백두산 근참기》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백두산이 오지랖을 벌리고 북포태산이 오른쪽 깃이 되고 증산이 왼쪽 깃이 된다. 둘레 몇백, 몇천 리가 실상 커다란 한 벌판을 이루어, 백두산으로 하여금 높음과 한가지로 크고 넓음이 임자가 되게 하니, 이것이 예로부터 천평이라 하여 신비로운 곳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천평을 포함한 백두고원은 고산 식물의 천국이다. 잎갈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으며 부게꽃나무, 산겨릅나무, 백산차, 월귤나무, 들쭉 등이 군락을 이룬다. 특히 들쭉은 백두고원의 대표 식물로 꼽힌다. 북한에서는 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 술로 담은 들쭉술은 북한이 자랑하는 특산품이다.

북한이 자랑하는 특산물인 들쭉술(출처_북한상품전문쇼핑몰)

필자는 1990년대 중반,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백두산의 중국 쪽 외륜봉 전체를 답사했을 때 들쭉 군락지를 지난 적이 있다. 그때 경험한 잘 익은 들쭉 열매 맛!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백두산의 신성(神聖)과 어우러져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