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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로를 다시 기억하는 법 신촌 포장마차와 스마트로드샵의 미시사

신촌역 8번출구 앞을 지나가신 적 있으신가요?

그 옆에는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습니다. 저희가 만난 포장마차 상인들의 경력은 수개월부터 30년 이상까지 다양했는데요. 만났던 상인들 중 가장 오랫동안 장사를 했던 인터뷰이는 다이소 앞 34년 경력의 상인 A였습니다. A는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당시 지자체의 폭력적 강제철거를 경험했으며, 80-90년대 대학가에서의 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있었던, 신촌 거리의 시대상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이 현재 신촌의 기억을 담고 있는 노점상들은 서서히 없어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포장마차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그리고 그들이 지금까지 관계 맺고 있었던 행위자들에 대해서 연구하며, 파편화된 기억들을 재구성하고자 했습니다.

노점상들이 점유하고 있는 신촌 곳곳의 구역 중에서도, 저희는 연세대학교 정문과 신촌역을 잇는 연세로에 주목했습니다. 해당 도로는 2000년대까지 포장마차가 빽빽하게 늘어섰던 거리였으며, 포장마차와 대학생을 이어주는 공간이었죠. 하지만 상권이 서서히 이전의 호황기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2010년대에 접어들며 서울시는 대중교통전용지구의 첫 시범사업지로 연세로를 선정하게 되었고, “보행자의 보행권을 보장하고 도로이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 사업(이하 연세로 거리조성 사업)이 시행되었습니다.

자세한 사업의 기획 배경 및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9년 서울시 조사결과, 연세로의 보행량은 시간당 2,000명에서 3,000명 사이였으며, 노점상 등의 시설물로 인해 연세로의 실질적 보행폭은 1~2m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왕복 2차선 도로는 통제가 안될 정도의 정체 구간이었는데요. 유동인구가 많은 연세로였던만큼, 보행자를 최우선으로 한 공간을 만들고자 서울시와 서대문구는 2차선 도로를 1차선으로 축소하고, 보행 공간 역시 넓혔습니다.

2021년 현재 연세로 위에는 (명물거리의 잡화상까지 포함하여) 약 21개의 스마트로드샵이 있으며, 연세로 공사 이전에 즐비했던 포장마차 중 스마트로드샵에 입점하지 않은 대다수는 지역을 떠나거나, 현대백화점 좌우 신촌로 옆으로 밀려났습니다. 서대문구와 마포구 사이를 가르는 신촌로 건너편, 신촌역 7번과 8번 출구 옆으로는 주로 분식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모여 있습니다.

저희는 이와 같이 분산되어 장사하는 노점상 및 스마트로드샵 상인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여러 관계망들을 되짚으며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포장마차가 어떤 공간 속에 위치하는 지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볼까요?

지난 시간들 동안 도시계획과 포장마차 연구를 지속하셨던 분들에 의하면, 포장마차는 "비공식부문 Informal Sector"에 속한다고 합니다 (조영지). 공식적인 경제와 제도 밖에 있기 때문이죠. 포장마차는 거리 위에 존재하기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다. 어느 시선을 통해 보느냐에 따라요.

하지만 저희는 공식과 비공식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그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파고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를 제대로 보기 위해,, 경계에 있는 공간 속 기억들을 통해 살피기로 했죠. 알로이스 리글은 특정한 공간이나 건축물이 “Intentional monuments, Historic (or unintentional) monument and Monuments containing age-value (의도적인 역사적 가치, 의도되지 않은 역사적 가치, 시간에 의한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했습니다. 특정한 공간은 그 공간에 대한 누적된 기억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그 가치가 변한다는 것인데요. 즉, 그 공간 속 사람들, 그리고 그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의해 공간의 가치는 변화합니다. 이는 “도시의 중요한 시각적 장면을 조장하는 것은 한두 개의 웅장한 건물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제인 제이콥스의 주장과도 궤를 같이 하는 부분입니다.

사진 출처: 서대문구청 티스토리

한 마디로 정리해봅시다. 연세로를 걷고, 점유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따라 연세로의 기억은 변화했으며, 연세로가 표상하는 가치와 풍경 역시 변화했습니다. 저희의 연구는 ‘연세로를 걷고, 점유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달라졌던 시점, 비공식의 공간이 “공식경제의 통계”에 잡히기 시작했던 시점에 집중합니다. 곧, 연세로의 변화를 야기한 핵심 사건이었던 2014년 진행된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사업(이하 연세로 조성사업)을 중심으로 말이죠.

연구 방법

① 참여관찰과 비구조적 인터뷰

저희는 3월 8일부터 5월 14일까지 약 두 달 반간 연세로와 신촌역 부근에서 참여관찰을 진행하며 수집한 정보들을 정리했습니다. 신촌 거리로 나가 포장마차·로드샵에서 음식을 사 먹거나 일대를 돌아다니며 현장을 주의 깊게 관찰함과 동시에 포장마차·로드샵 상인들과의 비-구조화된 인터뷰를 했죠. 그 과정에서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팔며 장사하는 현장뿐만 아니라 음식 재료를 파는 거래처와의 교류, 옆 상인들과의 관계망, 상인들끼리의 음식 메뉴 통일과 전략적 자리 배치 등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연구 참여자들이 처한 물리적·경제적·사회문화적 환경과 이들 행위의 사회적 의미, 행위자를 둘러싼 규범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독립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의 특정행위나 말, 관계에 대하여 치밀하고 맥락화된 분석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② 심층 인터뷰

참여관찰을 진행하며, 별도의 개별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여 연구 참여자들의 심적인 경험과 인식 역시 추가로 수집했습니다. 덕분에, 노점상연합회에서 직책을 맡고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노점상들과 구청의 대립부터 노점상 간의 대립까지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편집된 진술을 통해 개개인의 시각까지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또한,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사이에 연세대학교를 다녔던 졸업생들이 기억하는 연세로의 풍경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노점상과 연대활동을 했던 학생들의 진술을 통해서 노점상과 신촌 지역 대학교 사이의 관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서대문구청과는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도입한 노점상 재정비 시스템과 스마트로드샵 시스템에 대한 인터뷰도 진행했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연세로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 간의 내밀한 이야기를 포착할 수 있었기에 본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연구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③ 미시사적 접근

마지막으로, 저희는 객관적 증거주의에 따르는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미시사 방법론을 보완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미시사 방법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데요, 첫째로, 역사적 리얼리티의 제고를 위해 실명의 구체적인 개인이나 소규모 공동체를 대상으로 특이한 행동을 촘촘히 기술하며, 이들간의 관계를 추적해 기존의 사회사가 포착하지 못하는 틈새를 포착합니다. 이처럼 실명의 개인(들)의 구체적인 삶을 추적해 '주체가 살아있는 생생한 사건이나 역사'를 기술함으로써 역사를 '주체 없는 과정'으로 만드는 사회사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방법론입니다. 둘째로, 관찰자료만이 아니라 증거력의 미약으로 전통적으로 사료로 인정되지 않던 일기, 수기, 증언 등 사적인 자료도 활용합니다. 끝으로 셋째, 단순한 작은 이야기라는 비판에 대해 미시사적 스토리를 거시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window)으로 간주합니다.

이로써 미시사와 거시사회사의 연결고리가 마련됩니다. 도시에서 “불법적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포장마차들은 기존의 역사에서 역동적인 주체로서의 이름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노점상들의 구술생애사를 미시사적으로 분석하여 더 큰 맥락을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기술지 본문을 참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연세로 다르게 보기 ]

  1. 배제의 키워드: “보편적 접근권”

“깨끗한 [공공] 공간이라고 할 때, 우리가 상정하는 사용자는 중산층이예요. 맨날 웃고 있고 행복한 시민들을 상정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것만 가정해서 공공 공간을 만들어? (…) 이게 또 “안전” 해야 하잖아? 물론 수상해 보이거나, 좀 지저분하거나, 이런 사람들이 오면 무서울 수 있어요. 근데 중요한 건 무서워 보이는 사람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무섭다고 느끼는 이런 감정, 실제적인 어떤 감정의 코드나 문화적인 코드들을 개선해 나가는 거죠. 그걸 애초에 문 밖에서부터 차단하는 게 행정인가요?” (연세대학교 졸업생 P)

연세로 조성사업이 상정한 보행자는 누구였을까요? 통제권 밖에 있는 포장마차 상인이 아닌, 상권에 자본을 가져다주는, 시민성이 교육된 학생들과 중산층일 것입니다. 보행자와 대중교통 이용자 중심의 교통체계를 위해 시작된 조성사업은 “보편적인 접근권”을 위해 “보편적이지 않은”, 곧 통제를 벗어나는, 행위자들을 밀어냈습니다. 특히나, “보편적 접근권”이라는 말은 공사 전후로 단속을 집중적으로 받은 노점상들에게 낯선 말이었죠.

공사가 결정된지 1년여 만인 2014년 1월 공사를 마무리해 곧바로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운영되기 시작한만큼, 연세로 조성사업은 굉장히 발빠르게 일어났습니다. 그 사이, 이 사업은 진행 과정에서 노점상을 비롯한 이해관계자 간 평화로운 타협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인정받아 서울시 갈등관리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보행자와 대중교통 이용자 중심의 교통체계를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로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문석진 구청장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도시 구성원 간 타협이 평화롭게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고, 몸싸움이나 물리적 갈등의 내용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중교통전용지구 시범사업지로 선정되어 개통하기까지 지속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이해관계자 간 상생 협의를 이끌어낸 점을 높이 평가받아, 서울시 갈등관리 우수사례로 선정되고 국토도시디자인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노점상들의 기억 속에서 연세로 조성사업은 생존이 달린 문제였으며, 해당 사업은 타협을 바탕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구청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서부노련 사무차장이었던 K 씨는 기억을 더듬어 공사의 시작과 함께 있었던 혼란을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차 들어올 때 차 앞에 드러누워 갖고 막고…땅 파기 전에 공사하는 거 보면, 뭐 돌아가는 거 그거 넣어서 땅 줄 긋잖아요. 줄 긋고 포크레인 와갖고…그 줄 긋는 장비 와 갖고 줄 긋고 있는 거예요. 그럼 쫓아가서 거기다 발 집어넣고. 죽을 각오로 싸운 거예요…그리고 마지막에는 거의 이 사태가 진짜 완전 끝까지 올라갔었거든요. 열흘 좀 넘은 다음에는 경찰이 투입됐어요. 마지막엔 경찰특공대까지 나왔어요. 예전에 용산참사 들어봤죠? 그때도 경찰특공대 투입하고 그랬었잖아요. 물 대포 쏘고 위에서. 그런 정도까지 얘기가 나왔던 상황이었어요.” (서부노련 전 사무차장 K)

(사진 출처: 신촌 대중교통전용지구 공사차량 진입 막는 노점상들-뉴시스)

당시 구청에서 노점상들에게 제시한 대안책은 스마트로드샵을 만들어줄 테니 일부 노점상들이 그곳에 입주하는 것으로 합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구청은 안정적인 시설과 제도적 관리를 제공하겠다고 노점상을 설득했습니다. 40년 이상 장사를 이어온 고령의 노점상들이 매일 리어카를 끌고 연세로까지 와야 하는 상황의 어려움도 영향을 미쳤고요. 그 결과 오늘날 연세로에서 볼 수 있는 일렬로 늘어선 부스에 노점상들이 들어가 장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포장마차는 도시 공간의 상업 논리에 온전히 포획되지도, 정주 없는 속도와 이동만을 추구하는 도로교통체계에 복속되지도 않죠. 포장마차는 느릿느릿한 자신만의 속도로 도시 공간을 활보하고, 도로를 역주행하며, 공간을 탈-영토화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효과는 노점상의 노동력과 30분이 넘는 시간, 신체의 소모를 희생하여 달성됩니다. 노점상 C는 다음과 같이 한탄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거 힘들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아침에 한 9시 반이나 10시부터 계속 준비해서 나오는 건데. 오늘은 가스가 떨어져서 이렇게 일찍 닫는 거야. 보통 2시 반은 돼야 자…코로나 [전에는] 여기서 한 두 시면 들어가면 자는 시간이 한 3시. 그리고 또 9시 반이나 그 전에 일어나고. 되게 피곤한 직업이야.” (포장마차 상인 C)

그렇기에 노점상은 한편으로 정주민으로서의 안정감을 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사업은 그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으며, 조성사업의 결과, 포장마차는 물상성이 삭제된, 즉 고정되어 “장소성에 영속적으로 얽매”이는 스마트로드샵으로 변모함으로써 공간의 일부로 포섭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온새미로 티스토리

2. 공간 지배와 권력: 스마트로드샵 입주 상인과 구청의 관계

현재 연세로를 보면 이미 충분히 “개방”되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늘어선 가판대가 없는 거리는 쾌적하며, 이따금 공연자가 도로 옆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공원과 같은 공간이 도로 양 옆에 조성되어 있죠. 하지만, 이렇게 얼핏 보면 “개방적”인 공간은 앞서 말한 “가치 창출”에 제대로 기여하지 않는, 오히려 규격화되어 있고 위계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대안책으로 제공되었던 스마트로드샵은 부스 크기가 먹거리 판매용 기준 가로 2.5m, 세로 1.7m, 높이 2.4m로 정해져 있고요. 기존의 3면이 뚫려 있고, 손님들이 마주 보며 있었던 포장마차와는 외관부터 다르죠. 또한, 스마트로드샵은 허가된 전용 면적 이외의 도로를 점유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구청의 승인 없이 판매하는 물품을 변경하거나, 로드샵에 가림막 등 물건을 달 수 없습니다.

현재 서대문구청의 경우, 이미 노점상의 인적사항과 가족관계를 전부 파악한 상태이고, 매일 거리를 순찰하면서 (스마트로드샵 상인 J는 한 시간마다 순찰을 진행한다고 주장) 민원 처리를 담당하는 단속반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노점상들을 ‘관리’ 한다는 명목 하에 상시적인 감시체계를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물리적인 단속반을 넘어, ‘민원’이라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통해 이들을 통제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3. 결정화된 시간으로서의 공간

자, 데이비드 하비에 의하면, 공간은 시간 하에 예속되어 수동적으로 변형되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위계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고 얽혀 있는 개념인거죠. 시간이 공간을 변형시키는 만큼 공간은 시간에 영향을 미칩니다. 공간은 “압축된 시간을 담고” 있으며, “사실상 결정화된 시간(crystallized time)”이기 때문입니다.

긴 세월 동안 연세로에서 장사하며 “풍물의 요소이자 그 자체가 문화”로 존재했던 포장마차에는 서로 다른 기억과 역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각각의 포장마차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 사이에서 차이가 생산되고, 그러한 차이가 또다시 시간을 낳았습니다. 시민들은 거리를 횡단하며 풍경의 차이를 바탕으로 시간의 흐름을 인지했고요. 하지만 연세로 조성사업으로 인해 포장마차에 담겼던 기억과 역사성은 모두 탈색된 채 보도 및 시멘트 벽과 동일한 회색 빛의 컨테이너박스, 스마트로드샵이 자리잡았습니다. 의미체계와 장소성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상인들의 메뉴 구성도 변화했습니다. 기존의 포장마차는 다양한 안주와 함께 술을 파는 간이주점의 성격이 강했는데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주변 상가와 유사한 품목을 판매할 수 없으므로 선택 가능한 품목도 제한적이었고, 스마트로드샵은 앉아서 편하게 음식을 즐길 수 없는 구조여서 메뉴는 닭 꼬치나 닭강정, 와플 등 서서 빠르게 해치울 수 있는 음식으로 한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연세로는 정주의 공간이 아니라 이동의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시민들의 이동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그에 따라 상인들의 경제적 손실은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죠. 결국 스마트로드샵 사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었던 것입니다

(사진 출처: 데이비드 하비 : 공간의 정치경제학 - 대학원 신문)

4. 차이를 생산하는 공간: 포장마차는 여전히 공간이다

조성 사업 이후의 연세로는 앙리 르페브르의 ‘추상 공간’에 가깝습니다. 포장마차가 지니는 “고유한 차이(내부적 차이, 잠재적 차이)를 질식해버리고, 그 대신 추상적 동질성을 강요”하는 공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세로에는 “모든 것을 동질화하려는 권력에 의해 결정된 범주 속으로 강제로 분류되지 않을 권리”, 즉 ‘차이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앞서 밝혔듯 구청은 중산층 보행자만을 공간의 이용자로 가정한 채 연세로 조성사업을 진행했고, 그에 따라 그러한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노점상은 자연스레 배제되었죠. 하지만 보다 건강한 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 구성원들이 이와 같은 보편적 시민상에 포획되지 않고 차이를 유지하며 도시 공간 내에서 공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간이 차이를 생산하려면, 그 공간은 특수한 시간의 흐름과 역사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성이 꼭 1990년대의 먼 과거에 머무를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성은 매순간 새롭게 생성되기 때문이죠. 심지어 행정기관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는 스마트로드샵에서조차 그러한 시간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연세대학교 졸업생 N은 굴다리 인근에 위치한 스마트로드샵 ‘악동떡볶이’ 사장님과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그분은 거기서 쭉 계속 운영을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거기 운영하는 학생들이랑 개인적으로 술도 마시고 또 그분이 결혼을 하셨는데 결혼식에도 학생들이 와서 축가도 불러주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걸 봤을 때…그분이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돼서 연세대학교 학생들이랑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거가 엄청 좋았고…” (연세대학교 졸업생 N)

지역 포장마차는 단순히 응축되고 머물러 있는 기억의 보관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공유되고 확산되는 기억의 경유지로서 도시 공간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신촌역의 포장마차, 나아가 연세로의 스마트로드샵까지도 파편적인 시간성이 혼합된 장소로 존재하죠. 구청의 포장마차 철거 시도 및 스마트로드샵 규제는 그러한 시간성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요인이지만, 그럼에도 그 위협들로부터 도주하여 새로운 시공간이 생성되며 유지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신촌의 시공간이 유지되는 방식을 기록하고자 이 연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연결되고 이어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일시 정지해 과거 기억의 재구성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후 포장마차의 거리기억에 대한 연구를 다시 진행하게 된다면, 우리가 이야기를 엮으며 아쉬운 마음으로 편집한 뒷이야기들과 더불어, 사정 상 본 연구에 포함할 수 없었던 여성 상인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들을 기억하는 손님들이 있는 한,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연세로의 기억은 새로이 쓰일 것이기 때문이죠.

다음을 기약하며,

2021년 6월.

함께 기록한 사람들:

박여찬, 송지윤, 안하경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 주세요! anhkjo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