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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돌아보다 ANT2101 문화기술지: 국내 소비자 주도의 제로 웨이스트 운동과 비거니즘 실천

'그린슈머'와 '제비족'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지구적 생태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을 향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로 웨이스트(Zero-waste)’란 환경을 위해 쓰레기 생산을 최소화하는 생활습관을 강조하는 사회적 운동을 의미하며, ‘비거니즘(Veganism)’이란 채식주의(Vegetarianism)를 식생활의 영역에만 한정하지 않고 음식, 의복, 실험, 오락 혹은 다른 목적으로 동물을 착취하거나 학대하는 행위를 배제하여 이를 실천하는 생활방식을 말합니다.

미디어에서 연일 그린슈머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생태주의 운동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반영합니다. ‘그린슈머(Greensumer)’란, 환경 보호를 뜻하는 ‘그린(green, 녹색)’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msumer)’의 합성어로, 자신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제품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녹색 소비자'를 말합니다. 이렇듯 소비의 사회(Jean Baudrillard, 1970)에서 범람하는 상품 사이를 전에 없던 몸짓으로 비상하는 이들을 두고 ‘제비족’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하였습니다. 제비족이란,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의 앞 글자를 딴 말로 이 둘을 모두 실천하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은 생태위기의 대안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합니다. 한국 사회의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에 관한 사례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양자의 실천이 소비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며, 특히나 생태주의 운동에 개인의 소비자 정체성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연구의 질문은 크게 세 가지로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제로 웨이스트 운동과 비거니즘 실천은 어떠한 맥락에서 일치하거나 불일치할까요? 둘째, 제로 웨이스트 운동과 비거니즘의 실천을 방해하는 제도적심〮리적인 장벽은 무엇일까요? 셋째, 생태주의 운동에서 소비자 정체성은 어떻게 작용할까요? 위의 세 가지 물음을 가지고서 우리는 국내 소비자 주도의 제로 웨이스트 운동과 비거니즘 실천 양상을 탐색하였습니다.

알맹상점과 만나다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제로 웨이스트 상점 ‘알맹상점’을 중심으로 우리는 참여관찰과 더불어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알맹상점을 연구 현장으로 선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알맹상점은 제로 웨이스트나 비거니즘 혹은 양자를 모두 실천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해당 운동의 참여 행태 및 실천 동기에 관한 다층적인 분석의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또한 알맹상점은 전국 각지의 제로 웨이스트 상점뿐 아니라 환경단체, 지역 동사무소와도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망원시장에서 진행한 ‘알맹@망원시장’부터 시민단체와 함께 참여한 ‘화장품 어택 시민행동’에 이르기까지 알맹상점은 소비자 주도의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선도하고 나아가 기업과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 국내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이 소비자 중심의 생태운동으로서 전개되는 동향과 이들 사이의 간극을 살필 수 있는 주요 거점지로 알맹상점에 주목하였습니다.

알맹상점의 구호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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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상점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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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이 만난 알맹상점

알맹상점 내부. ©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이 '디폴트' 아닌 사회에서 살아가기

연구에 참여한 알맹상점 이용자들은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이 '디폴트(default, 기본값)'가 아닌 한국 사회에서 자신들의 소비자 정체성을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방식으로 생태운동에 동참합니다. 이들의 실천은 사물의 가치에 관한 인식의 대전환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이야기한 “모든 부(富)의 낭비에 대한 투쟁”(Baudrillard, 1999: 47)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천인들은 미디어와 주변인의 영향으로 ‘쓰레기 문제’에 관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하면서 문제상황을 인식합니다. 이를 계기로 일상적인 차원에서 소비 양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는데, 실천인들은 생활용품을 대체하거나 줄이고 물건을 구입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미니멀리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원순환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직접 요리를 해먹는 등 살림의 가치에 집중합니다.

이때 살림의 통제권을 행사할 자원이 뒷받침되는지에 따라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 실천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 양자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전방위적으로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기에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통제 가능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타율노동으로 인하여 일상의 시간을 점유 당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앙드레 고르(André Gorz)의 경고와 맞닿아 있습니다. 따라서 타율노동에 종속되는 삶 대신 자율노동과 자활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자발적 소박함(voluntary simplicity)(Duanae Elgine, 1998)을 실천하는 삶의 방식을 택한 연구 참여자들을, 생태적 합리성(Gorz, 2008: 65)에 근거한 능동적 주체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이 '디폴트'가 아니라는 것은 곧 그러한 운동의 실천에 제도적 또는 심리적인 장벽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수히 늘어선 벽 앞에 실천인들은 좌절을 경험하는 것만이 아니라 “작은 승리”를 맛보기도 합니다. 특히나 동료의 존재는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 실천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연구 참여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같이 할 수 있는 동지들”을 모으고 공동체를 꾸려가는 것은 미시사회적 관계망의 형성이자 자율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고르가 이야기한 생태적 합리성 개념을 재차 환기합니다.

알맹상점의 지속가능성

이러한 점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느슨한” “동네” 커뮤니티를 모토로 삼는 알맹상점은 비단 제로 웨이스트 실천뿐 아니라 자율노동과 자활노동의 가치를 복원하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알맹상점의 전신인 ‘알맹@망원시장 프로젝트’ 시절부터 알맹상점은 가치지향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무임 노동”이나 “자원활동”이 아니라 “아주 작게라도 인건비를 마련”해왔습니다. 당시 실무진들에게 “당신의 노동은 경제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노동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알맹상점 공동대표 H의 말은 알맹상점의 지속가능성을 설명하는 단서입니다.

또한 연구 참여자 전원이 알맹상점만의 특별한 점으로 꼽은 ‘커뮤니티 회수센터’는 알맹상점이 국내 제로 웨이스트 운동의 거점지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자원순환은 인력, 공간, 미관, 수익 등 다방면에서 가게 운영상 “완전 마이너스”지만 “가치를 알리”기 위하여 시작한 일이 장기적으로 의도치 않게도 “마케팅” 효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례는 이윤 창출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습니다. 즉, 가치지향적인 자율노동을 통하여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모델을 알맹상점이 보여준 것입니다.

알맹상점 커뮤니티 회수센터에서 수거한 우유팩들. ©

그 뿐만 아니라 알맹상점은 제로 웨이스트 상점과 ‘리필 샵(refill shop)’이 공존하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자원순환을 “기본값”으로 하는 “제로 웨이스트 생태계”를 조성하였습니다. 알맹상점이 제로 웨이스트 관련한 정보와 연락망을 선뜻 공유한 점 역시 국내 제로 웨이스트 운동의 확산에 기여하였습니다. 초기에 “쓰레기 덕질”이라는 “사심”에서 시작한 알맹상점은 이렇듯 제로 웨이스트 실천 네트워크의 거점으로서 거듭났습니다. 요컨대 알맹상점은 자발적 소박함을 실천하는 이용자 ‘알맹러’와 망원동의 ‘알짜(알맹이만 원하는 자)’들이 함께 꾸려가는 미시사회적 관계망이자, 자율노동과 자활노동의 가치를 복원해 나가는 국내 소비자 주도 생태운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알맹상점 리필 스테이션. ©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의 접점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은 다음의 세 가지 접점을 공유합니다. 첫째로 ‘쓰레기에 대한 인식’을 달리한다는 측면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과잉생산 과잉소비 체제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거니즘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D는 도축장 영상을 보고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떠올린 경험을 털어놓으며 공장식 축산 체제에서 동물이 ‘쓰레기’로 여겨지는 현실을 꼬집습니다. 또 알맹상점 공동대표 H는 자신에게 제로 웨이스트란 “물건이든 관계든 쓰레기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자 “버려지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버려지는 것들에서 가치를 찾”고, “교환가치나” “이윤적 가치가 아니”라고 해도 “자원순환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간의 매개”로 “그 물건이 다시 쓰임을 찾는” 것이 제로 웨이스트라는 것입니다. H는 쓰레기 문제가 “살림의 가치, 돌봄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직결”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쓰레기 문제는 사회적 가치관을 전복하는 일”이라고 짚어냅니다.

둘째로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은 '소비자 정체성'을 중심으로 운동이 전개됩니다. 실천인들은 미니멀리즘, 중고거래, 자원순환 등에 참여하는 형태로 자신의 소비자 정체성을 축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강화함으로써 생태운동에 관한 신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가치소비’와 ‘불매운동’은 생태운동에 있어 소비자 정체성이 강화된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러한 소비 방식의 전환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SNS와 알고리즘입니다. 실제로 연구 참여자 전원은 제로 웨이스트 및 비거니즘 실천에 있어 SNS의 힘을 강조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내가 관심있는 이슈가 찾아오는 세상”이라는 C의 말처럼, 이러한 정보 습득 과정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위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생태운동에 관심이 없는 이의 경우 관련 정보에 노출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적음을 뜻합니다.

제로 웨이스트&비거니즘 관련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셋째로 ‘정보 공유’는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의 실천 과정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정보는 미디어와 더불어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을 통하여 전달되고 확산됩니다. 모든 연구 참여자들은 동료와 지지자를 확보하는 것이 생태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강한 원동력이 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는 미시사회적인 관계망이 정보를 습득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함을 보여줍니다. 참여관찰을 실시하면서 알맹상점의 이용자와 매니저 혹은 이용자와 대표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 간에도, ‘리필 스테이션’과 ‘커뮤니티 회수센터’ 등 상점을 이용하는 방법이나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 관한 조언이 자연스레 오가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그 예입니다. 이렇듯 알맹상점은 자원순환과 더불어 지식의 순환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제로 웨이스트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생태운동의 방향

알맹상점 이용자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생태운동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과 관련한 ‘사회적 옵션’이 더욱 다양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생태운동은 ‘SNS’라는 장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물론 제로 웨이스트와 비거니즘이 소위 ‘힙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권위를 얻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SNS를 경유한 운동은 개인화 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SNS가 지닌 동료효과와 동료압박을 고려했을 때, SNS의 파급력을 인정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알맹상점과 같은 ‘구심점’을 두고 개인들이 응집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들이 SNS상에서 네트워크를 이루어 부당함에 목소리를 낸다면, “작은 승리”가 축적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와 타자에 대한 ‘돌봄’을 실천하는 동시에 ‘재미 요소’를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앞서 살펴본 알맹상점의 커뮤니티 회수센터 사례처럼, 일상 곳곳의 재미와 보상으로 생태운동 실천에 지속가능성을 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한 명보다 불완전한 여럿이 더 영향력이 있”다는 A의 말처럼, 완벽함이라는 목표에 압도되어 좌절하거나 냉소주의로 일관하기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바를 찾아 실천하는 것 역시 방법일 터입니다.

기업과 정부 제도를 누가 바꾸냐 하면 또 이게 소비자, 시민의 책임이기도 하죠. 아, 우리는 국가 잘못이야 제도 잘못이야 이런 말도 쉽게 하지만, 국가가 뭔가요? 국가 행정인가요, 공무원인가요, 국회의원인가요, 대통령인가요? 사실 국가의 실체는 그런 권력자들도 있지만 그 권력자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는 시민의 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가 탓이야, 제도 탓이야, 제도가 안 된 탓이야 이렇게 말할 때는 그러니까 시민의 탓도 있는 거예요. 시민의 책임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제가 기업과 제도 탓이고 이걸 바꿔야 된다고 말했을 때는 그 행동을 하나에는 시민의 행동도 있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해요. (중략) 기업과 제도를 바꾸는 것은 중요하고 그것들을 하는 시민의 여론이라는 게 시민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H, 알맹상점 공동대표)

생태운동의 참여 주체는 국가와 기업 그리고 시민입니다. 이때 기업과 정부의 변화를 추동하는 것은 소비자, 곧 시민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쓰레기 문제의 책임을 손쉽게 국가와 기업에 전가하기보다는 지금 여기,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일상에서 어떠한 변화를 실천하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인간과 동물, 식물과 토양, 물, 공기는 얽히고설킨 생명 공동체로서 지구라는 하나의 터전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의 오이코스(oikos), 사물과 생명체의 집,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쓰레기'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무엇이 쓰레기인가'라는 물음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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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줄이는 작은 마음들의 플랫폼' 알맹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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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사람들

문해민 / 문화인류학과
박소연 / 정치외교학과•문화인류학과
조예지슬 / 문화인류학과

본 포스트는 2021-1학기 문화기술지(ANT2101) 수업에서 이루어진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연구와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ansgoals27@gmail.com, thdus476@yonsei.ac.kr, joyejiseul@yonsei.ac.kr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연구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 표시가 된 사진은 연구자들이 직접 찍은 것입니다. 그 외 사진 출처는 하단의 Credits에 첨부합니다.

Credits:

다음 제작자의 이미지로 제작됨: Gayeon Cha - “on (1)” • Engin Akyurt - “untitled image” • 알맹상점 활동가 은의 브런치 - “다운로드” • Hoon Shin - “20200726_002-scaled” • Hoon Shin - “20200726_010-copy-1” • Shane Rounce - “untitled image” • Jasmin Sessler - “untitled image” • 알맹상점 네이버 블로그 - “IMG_6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