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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겨레의 평화통일을 기다리는 큰 산줄기 민병준 칼럼01

글 /사진 : 민병준_《해설대동여지도》, 《백두대간 가는 길》 저자

깊고 깊은 산속. 첩첩산중은 고요하다. 녹색의 짙은 숲을 헤치고, 들꽃 지천인 널따란 산상 초원에서 숨을 돌리며, 천 길 낭떠러지의 암릉을 지나기도 한다. 우리가 걷는 이 산줄기는 백두대간,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정신’이다.

필자가 대동여지도에 표기한 백두대간과 전통 산줄기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의 지도상 거리는 약 1,400km, 남한에 속한 구간인 진부령~지리산 천왕봉의 지도상 거리는 683km(산림청 자료)다.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하는 이 땅의 명산들이 대부분 백두대간에 있다.

백두대간은 북녘의 백두산에서 남녘의 지리산까지 이어진 분수령이다. 백두산(白頭山)에서 뻗어내린 큰 산줄기인 대간(大幹)이라는 의미다. 백두산(白頭山)의 ‘백(白)’, 지리산의 다른 이름인 두류산(頭流山)의 ‘두(頭)’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는 의견도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로키산맥·안데스산맥, 유럽의 알프스산맥을 척량산맥(脊粱山脈)이라 하는데, 백두대간도 한반도의 등뼈(backbone)다.

우리 겨레에게 백두대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분수령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숲이 짙은 덕에 생태적, 환경적 가치도 다양하다. 어느 계절에 가도 아름다운 대자연은 가슴을 열고 우리를 반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행복감에 젖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백두대간이다.

한국인들은 산을 경외하고 흠모한다. 왜일까. 산악이 국토의 70%가 넘어서라는 의견도 옳다. 산자락에서 태어나 산에서 잠드는데 어찌 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배달겨레의 시원(始原)이 산이기 때문이다.

우리 겨레의 영산(靈山)인 백두산.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이 산에 신시(神市)를 세웠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광활한 대지에 펼쳐졌던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큰 뜻,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우리의 건국이념은 21세기 인류를 위한 고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천왕봉 정상 표지석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의 영롱한 기운을 갈무리한 지리산 천왕봉. 누구라도 그 정상에 서면 1,400km를 흘러온 백두산의 맑은 정기가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곤 표지석에 새겨진, 짧지만 강렬한 문장을 읊조리며 감동에 젖는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백두산의 정기가 1,400km를 흘러와 맺힌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

1113. 《산경표》에 근거한 우리 전통 산줄기 1대간, 1정간, 13정맥을 의미하는 숫자다. 고산자 김정호의 역작, 대동여지도를 가능케 했던 우리 겨레 전통의 국토관에 입각한 산줄기들이다. 필자는 백두대간 관련 강의를 할 때면 일반인들에게도 꼭 이 숫자를 알려준다. 기억하기도 좋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우리의 전통 산줄기는 잊혔다.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던 백두대간은 광복 후 40여 년이 흐른 1980년대, 산악인이면서 재야 고지도 전문가였던, 고 이우형 선생이 인사동에서 《산경표》를 발견하면서 우리 앞에 등장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그리고 다시 30여 년이 흐른 지금, 선생은 비록 떠나셨어도 백두대간은 산을 사랑하는 우리 겨레 가슴에 되살아나 둘도 없는 보물이 되었다.

대동여지도를 연구하던 산악인인 이우형 선생은 1980년대 인사동에서 산경표를 발견함으로써 우리에게 백두대간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줬다.

우리는 자기 집 근처의 앞산과 뒷산을 넘어 전국의 100명산을 섭렵한 후엔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다. 많은 등산인들은 백두대간 남단의 지리산 천왕봉에서 첫발을 떼고, 고성 진부령에서 끝을 맺는다. 남에서 북으로 향하다 분단의 장벽에 막혀 걸음을 멈춰야만 할 때, 평화통일에 대한 갈망이 극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연이 닿는다면 군사통제구역인 향로봉까지도 갈 수 있다. 향로봉 너머엔 한반도 분단의 아픔인 철조망이 쳐있고, 그 뒤로는 북한 땅이 눈에 들어온다. 백두대간 남쪽 산줄기를 완주한 남한의 등산인들은 여기서 북한 하늘을 한참 바라보며 감동과 아쉬움으로 눈물짓다 돌아선다.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이 되는 그날, 우리는 지금 잇지 못하는 나머지 산줄기를 발이 시리도록 달려 백두산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면 누구라도 천지의 맑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겠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진 우리 산줄기 백두대간. 이는 단순한 산줄기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정신이요, 한반도 남과 북이 단절 없는 하나임을 알려주는 한민족 동질성의 상징이다. 비록 지금은 단절돼 있지만, 평화통일로 온전히 이어질 우리의 산줄기, 백두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