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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일 때 더 빛나는 존재 변재수 셰르파

늘 누군가의 산행을 돕기 위해 산에 오르는 존재, ‘셰르파’. 블랙야크 마운틴 셰르파 변재수 씨 역시 자신은 도전자들의 산행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도전자들을 위해 여러 번 올랐던 산을 또다시 오르고, 한 명 한 명의 상태를 살피며 매번 긴장 속에 산을 타지만, 그는 도전자들과 함께 등반할 때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블랙야크 셰르파 제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셰르파는 원래 네팔 부족의 이름인데, 유럽인이 알프스에 이어 히말라야를 오르기 시작했을 때 현지 부족의 도움을 받으면서 등정 시 도우미 역할을 해준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굳어졌어요. 2013년, 블랙야크에서도 클럽 회원들의 산행에 도움을 주는 조직을 구성하면서 셰르파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거죠. 블랙야크 셰르파는 현재 다양한 분야의 100여 명 정도가 활동 중이며, 그 중 마운틴 셰르파들은 명산 100 프로젝트 도전자들의 산행과 활동 전반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BAC의 섬&산, 클린 마운틴, 낙동정맥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 및 진행하기도 하고요. 셰르파들은 늘 도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함께 산에 오릅니다. 도전자들의 인증 신청도 셰르파들이 BAC 공지 사항의 공정한 심사 기준에 맞춰 승인하고 있어요.

도전자에게 꼭 필요한 존재군요. 막중한 책임 감이 필요한 일 같은데, 블랙야크 셰르파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셰르파 제도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처음엔큰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저는 암벽이나 빙벽 등 전문 등반을 주로 하던 사람이라 도보 산행에 그다지 많은 비중을 두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해외 원정 산행을 계획하고 훈련을 하면서 기초 체력을 키우기 위한 도보 산행의 필요성을 느껴 훈련의 일환으로 워킹 산행도 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상에서 명산 100 인증을 하는 등산객들을 자주 마주쳤고 서서히 관심을 갖게 돼 명산 100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이왕 도전을 위해 산에 오를 거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도 함께 하자는 생각이 들어 셰르파에 지원했죠. 2016년에 시작해 올해까지 마운틴 셰르파로 활동 중입니다. 셰르파 활동을 하던 중 ‘블랙야크 히말라야 임자체 셰르파 원정대’로도 뽑혀 임자체(6,189m) 정상에 오르기도 했어요. 블랙야크 셰르파 활동은 제 삶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임자체 정상에 선 변재수 셰르파(왼쪽에서 네번째)와 동료 셰르파들.

산악인들의 꿈이나 다름 없는 히말라야 등반도 한 만큼 의미가 클 수밖에 없겠어요. 그 외에도 셰르파가 된 이후 찾아온 삶의 변화가 있나요?

지금까지는 산과 관련 없는 업종에 종사했는데 셰르파로 활동하며 산을 더 잘 알고 싶어서 직업을 바꾸었어요. 이전까진 그저 산이 좋아 마냥 산에 올랐던 것 같더라고요. 암,빙벽 등반을 시작한 지는 20년도 더 지났지만 등산학교를 다시 다니며 수료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정이 있어 잠시 다니던 직장을 쉬어야 했는데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산과 관련된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죠. 대한적십자사의 응급처치강사, 산악안전강사를 비롯해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지도자 등 공인 자격증을 딴 후 산과 관련된 더 다양한 일에 도전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도전자들과 학생들의 안전 또한 지켜줄 수 있게 된 것 같아 뿌듯해요.

이제는 정말 산에만 푹 빠져 살게 된 거네요. 셰르파 활동을 통해 보람도 많이 느끼나요?도전자들도 셰르파 님들과 함께 하는 산행을 참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당연히 보람을 느낍니다. 그렇지 않다면 셰르파 활동을 계속할 수 없었겠죠. 금전적 보상을 얻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사명감만으로 하는 일이니까요. 블랙야크 셰르파는 도전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블랙야크 셰르파는 도전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단순히 산행 코스를 안내하고 차량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에 탑승한 후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하차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살피는 존재가 셰르파입니다.

도전자들이 인증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 번 오른 산을 다시 오르기도 하죠. 셰르파는 도전자들을 돕기 위한 존재이기에 늘 도전자들의 상태를 살피고 그날 산행에 참가한 도전자들 모두 무사히 하산하는 순간까지 신경 써야 합니다. 그 때문에 도전자들도 셰르파들과 함께 하는 산행을 선호하는 것이죠. 단순히 산행 코스를 안내하고 차량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에 탑승한 후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하차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살피는 존재가 셰르파입니다. 산행 중 뒤처지는 도전자가 있을 때도 후미 그룹을 책임지는 셰르파가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애쓰죠. 저 같은 경우 배낭에 늘 응급처치 도구들을 챙겨 다닙니다.

셰르파 님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산행 내내 든든할 것 같아요. 산행 중 기억에 남는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한 번은 사량도 지리산 산행을 한 적이 있는데, 한 도전자가 험한 산세 탓에 시작부터 뒤처지기 시작했어요. 마침 그날 정상에서 시산제를 지낼 예정이었던 터라 몇 가지 산제 용품들이 제 배낭 속에 있었는데, 그분을 살피며 오르다 보니 점점 선두 그룹과 멀어졌죠. 결국 저 먼저 서둘러 산제 장소에 올라 용품들을 가져다주고 다시 내려와 그분을 모시고 끝까지 함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셰르파와 함께 하는 산행이 아니면 뒤처지는 사람까지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렇다 보니 도전자분들도 셰르파가 동반할 때 더 안심하고 산에 오르시는 것 같고요. 또 한 번은 개인적으로 등산을 하는데 등산객 한 분이 체력이 고갈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신 거예요. 도움을 드리려 해도 계속 사양하셨는데 마침 명산 100도전 패치를 착용하셨길래 블랙야크 마운틴 셰르파라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경계심을 풀고 도움을 요청하셔서 함께 하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럴 때도 보람을 많이 느끼죠

바로 그런 점이 명산 100 프로젝트의 장점인 것 같아요.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같은 도전을 한다는 걸 알고 나면 왠지 전우애가 느껴진달까요?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게되죠

혼자 산을 오르다 보면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일이 거의 없어요. 산행 내내 대화 한마디 하기도 어렵죠. 하지만 명산100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어떤 경로로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게 돼요. 셰르파와 함께 하는 산행만 생각해봐도 참가 신청을 하는 순간부터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교감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명산 100 프로젝트 도전자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네요. 그 외에도 명산 100 프로젝트의 장점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산행을 기록으로 남겨준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죠. 매번 산행 일지를 쓴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명산 100 프로젝트에 도전 하다 보면 매번 산행이 사진과 함께 기록으로 남으니까요. 또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 때문에도 많은 도전자가 보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들수록 인정받을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데, 명산 100 프로젝트 인증을 통해 매번 정상 등반을 인정받게 되니 더 열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거죠. 그리고 산을 통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명산 100 프로젝트 도전자 중엔 투병 생활을 이어가는 분들도 있는데, 도전을 통해 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욱 강해져 완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도전을 위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큰 장점이죠.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도전을 핑계 삼아 여행하듯 다닐 수 있는 거죠. 계절마다, 산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색다른 매력을 선보입니다. 인증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풍경도 충분히 즐기며 산행하길 바랍니다.

도전 인증에만 몰두하다 산행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아요. 도전자분들에게 도움 될 만한 이야기를 좀 더 해준다면요?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하듯 100곳의 명산도 마찬가지예요. 한 곳 한 곳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완주할 수 있습니다. 멀고 힘든 여정이지만 조급해하지 않아야해요. 도전에 정해진 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도전을 하다 보면 각자의 사정으로 잠시 쉬어 갈 수도 있는 것이고요. 명산 100 프로젝트는 경쟁이 아니에요.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산행하며 아름다운 풍경도 눈과마음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어렵게 시간을 내 찾은 산인 만큼 정상에 꼭 오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되죠. 생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새벽 일찍 일어나 산을 찾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많거든요.

산에서나 삶에서나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럴 때면 산을 통해 삶을 배운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번 산행을 하며 느끼지만, 우리의 삶이란게 언제나 좋은 것도 아니고 언제나 나쁜 것도 아니잖아요. 시련에 부딪혔을 땐 막막하기만 하고 모든 게 다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시련을 계기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해요. 산 또한 늘 험난하고 힘든 오르막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연히 들어선 길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기도 하죠. 이렇듯 산과 삶은 매 순간이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산에 오를 계획인가요? 산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더 남았나요?

걸을 힘이 남아 있는 한 계속 산에 오를 것 같습니다. 히말라야는 꼭 몇 번이고 다시 가보고 싶고요. “히말라야에 안 가본 이는 있어도, 한 번만 간 이는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실패의 기억이 남아있는 알프스 몽블랑 등반도 꼭 다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아직도 올라야 할 산에 대한 생각뿐이시네요. 산이 왜 그렇게 좋은가요?

산속에 있다 보면 세상에 오직 산과 나만 존재하는 기분이 들어요. 산 아래 일들을 떠올릴 필요 없이 오로지 산행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계속 산을 찾게 되는 거죠. 산을 통해 몸과 마음이 모두 치유되는 느낌이에요. 또 산에서 만나는 인연, 산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들이 저를 계속 산으로 향하게 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암벽과 빙벽을 주로 해 늘 누군가와 줄로 연결되어 있는게 익숙해요. 산에선 서로 의지하며 오르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동료를 믿고 의지하듯 도전자들은 저와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산을 오르죠. 도전자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나보다 그분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도 말이죠. 물론 셰르파라고 해서 모든 도전자보다 산행 능력이 뛰어난 건 아니에요. 셰르파 활동을 하지 않고 묵묵히 산에 오르는 분 중에도 산행 능력이 뛰어난 도전자가 적지 않아요. 고령이거나, 불편한 몸으로도 꾸준히 산에 오르는 분들을 보며 저 역시 많이 배우죠.

산에 오를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것들을 얻고 돌아오시겠어요. 산을 통해 배운 것 중 도전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등반가 리오넬 테레이Lionel Terray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죠. “등산이란 무상의 행위다.” 저 또한 산을 통해 무언가 얻기를 바라며 오르지 않습니다. 산을 오르는 그 자체가 좋을 뿐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산을 통해 늘 배움을 얻고 돌아오는 건 마치 산이 주는 선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늘 ‘오늘 오르는 이 산이 가장 힘들지만, 지금 보는 이 산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저 그날,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산이 낮다고 해서 절대 만만히 봐서도 안 되고, 산이 높다고 해서 지나치게 주눅 들 필요도 없어요. 아무리 조심해도 다칠 수 있는 곳이 산이니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하산하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되 너무 겁을 먹진 않아야 합니다. 가끔 어떤 산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대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아요. 힘들었던 경험을 굳이 오래도록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요?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죠.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내가 산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언제 어느 산을 올라도 그날의 산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그날, 그 산의 풍경은 오로지 그 순간에만 볼수 있으니까요.

변재수 셰르파와 동료 셰르파들은 임자체 원정대에 참가해 정상에 올랐다. 암자케 원정르 함께한 변재수 셰르파(맨 오른쪽)와 동료 셰르파들이 로체 남벽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